2023.09.11
태그카페는 나름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랑이라는 브런치카페로 시작해서 태그카페로 바뀐 후 여러 명의 사장님을 거치며 지금의 태그카페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태그카페의 전 사장들은 모두 성이 특이하다며 단골들이 말해주시기를 여씨, 주 씨, 옥 씨를 거쳐 나 황 씨까지 굳이 하나하나 열거를 해주신다. 각자의 성씨는 다르지만 카페 운영이나 인테리어에 대한 생각은 비슷했던 것인지 카페는 큰 틀은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것 같다. 내 앞 옥 씨 성의 사장님도 큰 테이블 하나만 교체하고 변화 없이 그대로 운영해 왔던 것 같다. 이렇게 카페의 소소한 부분들까지 열거하면서 설명해 주는 분들이 몇 분 계신다. 옥 씨 성을 가진 전 사장이 그랬고 두구동 시래기집 사장님과 브니엘여고 선생님이 그랬다. 그 외 다른 마을 분들이나 상인들은 태그카페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으셨던 건지 주인이 자주 바뀐다는 말 외엔 별다른 말씀을 해주시진 않으셨다.
다들 입을 모아 내 앞의 옥사장을 칭찬했다. 32살 어린 나이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태그카페를 인수한 그녀는 사업수환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겉보기에만 좋아 보이는 빛 좋은 개살구의 장사치 삶을 살았는지 알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한 달간 운영해 본바 평일 점심 알바까지 써가면서 운영할 정도로 손님이 많지도 않으며 그녀가 단골이라 소개해준 사람들이 대부분 그전사장님 때부터 오셨던 분들이라는 것 정도다. 그녀는 처음엔 아이를 가져야 해서 가게를 내놓는다고 했으며 조금 친분이 생기자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고 시아버지 건물에 대형 카페가 들어서는데 거기 매니저로 일주일에 2-3일씩만 가서 매장 운영을 봐주기로 했다고 했다. 가계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시아버지가 카페 말고 골프존에서 경리일을 하라고 했다면 절대 안 할 거라면서 투덜거렸다. 열두 띠를 돌만큼 어린 그녀의 투정인지 엄살인지 아니면 자랑인지 모를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카페를 인수인계받으러 다녔다. 카페 인수일을 며칠 남기고 그녀는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긴다며 이미 공사 중이라고 자기도 어제 시래기집 사장님한테 들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동네에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며 자신이 더 펄적 뛰면서 나에게 생계가 아니니 너무 신경 쓰시지 마시고 오픈 빨은 있을지 몰라도 얼마 못 갈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날 저녁 나는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가게 오픈전에 그런 말을 듣고 어느 누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안 그래도 동생들은 예전 네일숍할 때를 떠올리며 가게 연식에 비해 권리금이 과하다며 더 깎아야 한다면서 한 마디씩 해오던 터였다. 옆에 프랜차이즈가 생긴다는 걸 알면 동생들은 분명히 그만두라고 할게 뻔했다. 권리금 한 푼도 못 건지고 네일숍을 접어야 했던 시절을 또 언급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녀에게 시작도 하기 전에 의욕이 상실된다며 가게오픈 후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가 생긴다는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했다. 그녀가 자세히 알려준 가게 관련 정보와 단골들, 레시피, 노하우 등등 그런 게 아니었다면 태그카페를 인수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않았을 것이다. 난 당장 한 달도 안돼서 옆에 프랜차이즈가 오픈한다는데 가계약금 포기하고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녀와 항상 붙어 다니던 시래집 사장님도 그렇고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가 생기는데 전혀 몰랐다는 게 사실 믿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권리금도 주변에서 다들 과하다고 한 마디씩 하고 있는 터에 여기서 발 빼는 게 최선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녀는 프랜차이가 생긴 다는 건 자신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고 권리금은 합당하며 자신이 만든 상권에 매출도 나쁘지 않으며 자신이 싸게 들어왔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냈던 권리금만큼 전부 회수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내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도 오픈하고 몇 달 만에 옆 찜질방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해서 타격을 받았으며 아직도 옆 찜질방사장님과는 아는 체도 안 하고 지내고 있다과 말했다. 엄청 배려해 준다는 투로 그녀는 100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난 고맙다고 했고 사장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서 인수인계 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카페일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오다가다 자주 들러서 가게 운영하는 것도 충고해 주고 맛평가도 해달라고 했다.
그 뒤 3일 후 나는 태그커피를 인수받게 되었다. 그 전날까지 포기를 고민하면서 이걸 시작해서 잘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한 밤을 보내고 난 뒤였다.
그녀는 수완이 좋은 카페 사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단골들은 그녀가 마지막에 베풀고 간 공짜 커피를 언급했고 이 근방에서 이 카페가 그나마 잘되는 곳이라며 입을 모았다. 그녀는 내가 인수받은 첫날에 약속장소를 카페로 잡았다며 시래기사장님과 지인을 데리 왔다. 그다음 날도내가 근처에 개업떡을 돌리는 동안 가게를 봐주겠다고 했다. 거절하지 않았다. 신경 써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개업떡을 돌리는 걸 알면서 굳이 시아비지 건물의 카페에 재고로 남은 빵을 가져와 자신의 단골에게 나누어주면서 카페매니저로 갈려고 했는데 지금 백수 됐다며 자주 오겠다며 떠들어댔다. 나는 그분들이 나가실 때 얼른 포장한 떡을 챙겨드리며 이건 개업떡이라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녀가 어떤 캐릭터인지 인지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 며칠 상간으로 카페를 들락거리면서 시래기집 사장님을 대동하거나 옆 회사 사모님을 카페로 불러내서는 한 시간씩 앉아있었다. 바쁘면 도와드릴까요? 한마디도 덧붙여가면서..... 카페 여기저기를 훑어보며 이건 여기 두면 불편할 텐데,,, 반지 끼고 일하면 불편하지 않아요? 그 목걸이 내 워너비인데~ 온갖 말들을 쏟아부어 대면서 안 그래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상에 한 번씩 돌덩이를 던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가게 인수 일주일이 조금 지나서 빙수기가 말썽을 부리더니 2주 후엔 냉장고가 유명을 달리했다. 가게 도어록이 작동하지 않아 주인을 불러 가게 문을 연적도 있었다. 오픈 한지 2-3주 동안 빙수기를 고치고 냉장고를 새것으로 교체했으며 도어록 상태에 적응해 가면서 정문열쇠를 필히 지참하고 퇴근하게 되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날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녀는 카페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혼잣말인지 뭔지도 모를 인간 고라니 사건을 언급하면서 억울한 일이 있었다고 툴툴거리고 있었다. 가게 빙수기 문제로 문자를 주고받은 지 며칠만이었다. 그녀에게 빙수기뿐 아니라 냉장고도 고장 나서 새로 주문해 놓았다고 말한 뒤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얼마에 샀냐며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넘겼다.
자신은 억울하게 신호위반으로 딱지를 끊게 되어 카페 옆 사무실에 블랙박스 영상을 프린트하려고 들렀다면서 구구절절 자기 이야기만 해댔다. 그리고 카페 일이 좋아서 집 근처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다음 주부터 골프존에 경리로 일하게 되었다면서 신세한탄인지 엄살인지 모를 자신의 신상에 대해 일일이 보고를 해주었다. 그리곤 옆 사무실에 가서 필요한 것을 프린트하고 그 사무실 사모님과 가게에 와서는 한 시간을 앉아있었다. 새로 추가된 메뉴를 맛보겠다고 해서 두 잔 서비스로 건넨 직후 그녀는 옆 사무실 직원들에게 음료를 사기로 했다면서 8잔 정도의 메뉴를 보여주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원래 자신이 운영할 때부터 그 사무실의 주차장을 사용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50% 할인 서비스를 해오고 있었고 나도 그렇게 인수인계를 받아서 그대로 이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부 서비스로 드리고 싶은데 내 코가 석자라 하던 대로 50%만 결제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50%를 결제하고는 음료를 들고는 옆사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 와서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 일수도 있고 그냥 넘겨도 될 일이었다. 그냥 그녀가 카페에 자주 나타나는 게 내심 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말하는 것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간다고 문을 나서면서 그래도 인생 선배이신데 배울 게 있을 것 같다면 자주 보자고 했고 나는 또 습관처럼 자주 오라는 말을 해버렸다. 뒤돌아서 후회하면서....
다음날 아침 일찍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갈 때 자주 오라고 말하고는 뒤돌아서 사실 후회했다고~
원래 카페든 어디든 가게를 인수하고 전 사장이 이렇게 자주 매장을 방문하는 거냐고... 혹기 카페가 다시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다시 양도해 드리겠다고 했다. 너무 정신없고 하루하루 챙겨야 할 일 많은데 굳이 가게에 와서 자신을 신상을 투덜거리고 가야 되는 건도 잘 이해가 안 간다고.... 가게에 문제가 생겨도 이젠 도움 줄 것도 없다는 걸 잘 아시면서 조금 느긋하게 지켜보시다가 천천히 연락 후 방문해 주시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이 문자로 이제 그녀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질 수도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녀의 반응이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발끈해서 자신이 눈치가 없었다면서 이제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더 길고 긴 내용들도 함께 쏟아부었지만 난 그녀가 카페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에 일단 안도하게 되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누군가를 미원하고 원망하고 헐뜯고 욕하는 것도 굉장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것 같다. 그녀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이상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 자신의 관계에 대한 맺고 끊음은 보는 사람이나 시선에 따라 좋은 쪽이든 나쁜 쪽으로든 엇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지만 나 자신이 생활하는데 더 나은 방향성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평가보다 나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것 같다.
여하튼 나는 그냥 내 스타일의 태그카페를 만들어나가길 원한다.
그녀의 단골이 내 단골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녀가 쏟아내 놓고 사라진 말들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살아보려고 한다. 편견만큼 사람사이에 벽을 만드는 것이 있을까?
그녀가 내게 심어놓은 편견들을 덜 치고 그냥 처음이니까 처음 사람을 대하는 마음 그대로 똑같이 손님을 맞이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의 태그커피를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