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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랜드 Jul 11. 2024

단골손님

2023.10.02

단골은 늘 정해놓고 거래를 하는 곳이나 손님을 말한다. 태그커피에는 그 짧은 역사를 꿰뚫고 애정인지 관심인지 아니면 어떤 관계로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있는 건지 모를 사람들이 있다. 시래기집 사장님과 브니엘 여고 선생님이 있고 바로 옆 동방이엔지 사모님도 있다. 시래기집 사장님은 자신이 시래기집을 오픈할 때 비슷한 시기에 태그커피를 인수한 예전 사장님과의 친분을 이야기하면서 그분이 만든 메뉴들을 칭찬했고 나에게 연결을 원하면 연락처를 줄수도 있다며 친분을 과시했다. 그렇지만 내가 카페를 인수하면서 겪은 사장님은 일방적으로 내게 카페를 양도를 했던 옥사장의 입장에서 그녀의 이야기만 듣고 나를 판단하고 그녀 옆에 붙어서 편을 들어주던 그저 그녀의 인맥으로만 보였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나 친해지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바쁜 사람이었다. 사실 그렇게 믿음도 가지 않았고 나에겐 딱 그 정도의 주변 사들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이다. 예의상 시래기집에 가족들과 가서 식사를 한번 했고 포장주문도 한번 해서 갔다. 주변 만두가게나 김밥집에서도 한 번씩 포장 주문을 해갔고 간단히 식사대용으로 사 먹기도 했다. 시래기집 사장님은 내게 만두가게 사장님과 김밥집 사장님과 별 차이 없는 주변 상인이며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딱히 거리를 둘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나를 걱겅하는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옥사장 입장을 대변하고 자신의 입장을 어필하려고만 하는 사람이라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분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주면서 수긍해 주면 되는 일이다. 나는 옥사장처럼 어리지도 않고 자신의 관심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것이다. 그녀는 나와 가까워진 듯 편하게 대하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 둘 사이엔 옥사장이 있었고 그녀로 인해 연결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가끔씩 들러  인사말도 하고 커피도 사갔다.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옆 가맹점 오픈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을 알기에 꼬박꼬박 현금으로 커피값을 지불해주고 있었다. 가게 인수 후 두 번째 주말을 맞이할 때즈음 그녀는 하얀 꽃다발을 들고는 가게를 들어섰다. 어제 결혼식을 다녀오며 이뻐서 챙겨 온 꽃이라면서 약간 시들하긴 한데 아까워서 가져왔다며 가게에 두라고 했다. 다급히 돌아서면서 오늘 자신의 연로하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지금 바로 강원도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90이 넘은 나이에 위독하다는 걸 이미 전해 들었기에 나도 안타깝고 마음이 쓰였다. 나는 얼른 여분의 봉투를 찾아서 현금을 조금 넣어서 그녀를 뒤쫓아서 나갔다. 시래기집 앞에 세워진 차에 가득 찬 그녀의 가족들 사이로 얼른 그녀에게 봉투를 쥐어주며 잘 다녀오시라고 전했다. 그녀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내 사람은 아직 아니라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다. 그 정도의 호의는 아마 주변 상인 누군가에게도 똑같이 했을 것이니 나에겐 별다를 게 없는 성의의 표현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조금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그 이후 가게로 와서 긴 시간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온 일들을 이야기해 주고 또 다른 날은 긴 시간 자신은 정말 옆에 가맹점이 생긴다는 것을 몰랐다며 나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나는 그저 시래기집이 새로 생긴 가맹점 바로 옆이라 자주 가기 힘들 것 같다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거기를 지나다가 단골들이 그 집 커피를 사고 있거나 손님들이 많은 것을 보면 속상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 이후 그녀는 우리 카페에 자주 오지 않는다. 그녀는 아마 우리 가게 앞을 피해서 지나다니고 있을 것이다. 더 깊게 더 친밀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저 천천히 지켜볼 생각이다. 그녀는 여전히 옥사장이랑 연락하면서 지낼 것이며 이곳의 상황들을 전해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쁠 것도 없고 신경 쓴 일 것도 없다. 그저 우리 둘의 관계 사이에는 옥사장이 존재하며 그것이 어쩌면 걸림돌처럼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추석 전에 시래기집 사장님 동생분이 모자를 눌러쓰고 음료를 사러 왔다. 그녀에게 음료를 주며 뒤늦게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더니 그녀는 벌초를 하러 왔다고 했다. 동생분이 돌아간 후 한동안 가게에 얼씬도 하지 않던 시래기집 사장님이 떠올라 큰 마음먹고 마카롱 선물상자를 꺼내 들고 시래기집으로 향했다. 가맹점 커피집 사장은 밖에 나와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 시래기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벌초가신다는데 가족들과 나눠드시라며 상자를 전했다. 추석 선물 겸 드린다고 덧붙이면서. 그녀는 너무 놀라면서 자긴 준비한 게 없다며 당황해했다. 옆에서 동생분은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보다며 살짝 자책까지 했다. 추석 잘 보내세요~ 인사 후 뒤돌아서 나왔다. 가맹점이 생긴 후 처음으로 그 앞을 지나 시래기집을 방문한 것이다. 혼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이게 뭐라고 그 앞으로 당당히 지나다니질 못하는가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핑곗거리 없이 시래기집을 가는 것이 내심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면 되는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은 없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더 마음을 쓸 필요도 없다. 그저 선을 지키면서 약간의 예의는 지키고 살길 바랄 뿐이다.

브니엘 여고 선생님은 듣던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매너 있고 선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가게에 가져다 놓은 사진이며 그림이며 의자며 인형이며 그리고 추천 메뉴들을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나열하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자신은 단골이라기엔 매출에 큰 기여를 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와서 온갖 간섭들은 다 하고 산다고 대놓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 가맹점이 생겨도 여기는 여기만의 장점이 있으니 매출에 너무 개의치 말고 분위기와 맛을 유지하면 좋을 것이라고 충고까지 해주었다. 그는 내가 집이 멀어 카페 마감시간이 빨라져서 평일에는 자주 오기 힘들겠다며 아쉬워했지만 난 속으로 살짝 안도하기도 했다.

그는 주말에 두어 번 부인과 함께 와서 몇 시간씩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갔다. 간간히 이런저런 이야기와 개인사까지 걱정해주기도 하면서 한번 오면 긴 시간을 보내고 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따로 불편함을 느끼게 한 것 같진 않은데 몇 주째 그는 주말에도 일절 방문을 하고 있지 않다. 내가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 것인지 그의 정확한 의중은 잘 모르겠다. 그가 신경 쓰고 챙겨줄 만큼 나와 카페가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차 한잔 시켜놓고 편하게 몇 시간씩 시간을 때울 공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런 편한 장소를 다시 물색하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옆의 가맹점 커피가 산미가 있어서 자기 입엔 맞지 않다고 했지만 그쪽으로 옮겨서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것은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그의 자유의지이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그만일 것이다. 그가 다시 와서 또 어떤 말들을 쏟아낼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앞으로 다시는 태그커피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내가 편한 존재가 아님은 확실히 느껴진다.

동방이엔지 사모님... 이분도 진짜 요주의 인물 중 하나이긴 하다.

회사직원들이 얼마나 사모님 눈치를 많이 보고 사는지 본인만 모르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직원들이 그 정도 눈치는 당연히 보고 살아야지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 역시 옥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나에게도 주차장 이용의 배려를 해주시겠다며 직원들의 음료 50% 할인혜택과 본인의 음료 무료 이용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아서 누리고 계신다. 그러면서 오후에 한가할 때마다 오셔서 거의 매일 샷추가 커피를 받아가시면서 카페운영은 할만하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시고 계신다. 젊은 직원들에게 태그커피의 50% 할인이 마치 회사복지처럼 내세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직원들은 카페 운영을 더 걱정해서 비싼 음료보다 아메리카노만 주문한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그녀는 주차비 계산하듯 꼬박꼬박 일주일에 4-5번씩 4샷의 커피를 받아간다. 주말에는 내가 그쪽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으니 주중만 이용한다고 쳐도 거의 주차비 이상의 혜택을 누리고 계시긴 하다.

그래도 가끔 가게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고 말이라도 손님들도 자신의 주차장을 이용해라고 말해주시니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옆 가맹점 생기고 몇 번은 직원들의 음료를 8잔씩 주문해서 가기도 했다. 분명 나름의 신경을 써주는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녀는 가끔씩 앞의 옥사장이 정말 잘했다면서 여름엔 수박화채를 만들어왔으며 직원들과 자신에게 잘했다면서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댔다. 내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점차 그 빈도가 줄어들긴 했다. 그리고 분명 옥사장이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하소연을 해댔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가게 매출을 궁금해했고 내가 어떤 생각으로 카페를 운영하는지도 물어보면서 태그커피의 근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가끔은 태그커피가 동방이엔지 구내 커피숍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 옥사장의 이상한 인수인계로 인해 나 또한 부담감을 가지고 상대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계산법에 다를 수 있는 법이니 그저 내가 참고 넘어가면 그만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주중에 그쪽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직원들의 음료를 50% 할인해주고 있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날 마스크를 낀 젊은 청년 한 명이 들어와서 아이스라테를 주문하면서 "동방에서 왔다고 말하면,,, "이라며 자신이 이제 동방이엔지에서 일을 할 것이며 서울에서 거주 중이라 정리하고 내려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라테를 50% 할인된 가격으로 결제 후 연휴에 회사는 무슨 일로 나온 거냐고 물으니 고양이랑 강아지 밥을 준다고 나온 곳이라고 했다. 사모님이 사무실에 키우는 고양이랑 강아지 때문에 주말에도 한 번씩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니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도 신입사원한테 연휴에 고양이와 강아지 밥을 주라고 나오라고 했다는 것이 좀 이상하면서도 그분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쁘장하게 생긴 이 청년은 추석연휴가 끝나기 전에도 카페를 방문해서 라테 두 잔을 할인된 가격으로 챙겨갔다.  이 회사는 정말 태그커피 50% 할인을 회사복지로 신임사원들에게 어필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모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전에 직원들과 드시라고 안겨준 웨지우드티백 선물세트는 아직 직원들은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이후 사모님은 카페에 오지 않고 있다. 신입사원을 대신 카페로 보내면서 자신은 선물세트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직원들 주기 아까우셨을까? 주자창 월이용료는 자신이 내고 직원들에게 음료할인이라는 복지를 안겨준 것만으로도 자신이 너무 많이 베풀고 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직원들 개인에게 작은 거라도 선물을 나눠주어야 될 것 같다. 사모님께 덥석 괜찮은 걸 선물했다가 직원들은 구경도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것을 다 챙기는 분이신 것 같다.

자의 반 타의 반 사람들과 교류 아닌 교류를 하고 지내다 보니 내 나름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정 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것 같다. 누가 누굴 감히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을까? 갑자기 소름기치게 무서워졌다. 그저 이 정도 생각에서 멈추고 더 이상 생각을 깊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의 속을 누가 제대로 알고 판단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겠는가....

이제 겨우 2달이 지났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예측할 수 없는 그 마음들을 애써 헤아리려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 느껴지는 안도감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태그커피가 내 스타일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만의 단골을 만들고 나만의 분위기와 맛을 낼 수 있는 공간되어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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