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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젖은 티셔츠 실험

by 제이

몇 년 전 땀에 젖은 티셔츠 실험을 우리나라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EBS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주제는 사랑과 연애였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행동인지, 본능에 있는 행동인지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중 한 실험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리고 지금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이미 1995년 스위스 동물학자 클라우드 베데킨트가 발표한 논문에 나와있는 실험이었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44명의 남성에서 깨끗한 티셔츠를 이틀 동안 입게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향수나 데오드란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온전히 남성들의 체취가 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회수한 티셔츠를 49명의 여성에게 1인당 7장의 냄새를 맡고 평가를 하게 하였다. 그 결과는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티셔츠는 그 여성과 유전자의 차이가 가장 큰 남성의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항원복합체의 유전자는 서로 다른 유전자가 만날수록 그 자녀는 더 다양한 질병에 저항성을 지니게 되어 있다.


이 실험의 시사점은 우리는 이미 본능에 의해서 이성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 아이의 엄마, 아빠를 고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주변에도 머리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은 나랑 취향이 너무 안 맞아."

"이 사람은 조건이 나랑 안 맞아."

"이 사람은 장남이라서 싫어"


이런 이성적인 조건들로 서로를 재단하고, 잘라내는 경우가 많다. 내게 맞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현실적인 조건들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 나랑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 기왕이면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찾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순수한 이끌림'에도 주목해 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자손에게 더 건강하고 저항력이 강한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연애를 차가운 이성으로만 가지고는 하지 못한다. '뜨거운 몸' 즉 본성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 친구가 버스에서 내리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가 쫓아와, 전화번호를 물었다고 한다. 그때 친구는 그 남자가 굉장히 철없게 느껴졌다고 한다. 요즘 모든 조건 다 재고, 결혼할 때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생각하고 연애하는 이 시대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성에게 다가가는 그가 20대 초의 남자들이나 하는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서른 하나였다. 그래서 더 철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은 그 순간의 이끌림에 용기를 조금 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람이 외모를 보고,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 기저에 있던 본능이 그를 움직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때 무조건 눈에 보이는 조건만을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너무 서로가 다른데, 너무 안 맞는데 '내가 왜 이 사람한테 끌리는 거지?'라는 의문이 좀 풀렸기를 바란다. 그건 바로 그 사람이 가진 유전자가 내꺼랑 가장 다르기 때문이니까.


자... 그럼 이제 옆에 있는 썸남 썸녀의 냄새를 한번 맡아보자... 좋나 안 좋나... 안 좋으면 말해주자.


저기... 너... 냄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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