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 남자와 만나기 시작했다. 1편

by 제이

내 영어의 폭발적 성장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이가 있다.

그는 미국 남자다. 나는 Jonny와 헤어진 후, 조금은 자유로워진 듯했다. 그리고 홍콩 친구를 따라 파티에 갔다가 그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에서도 ‘그럼 우리 사귈까?’라는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꽃잎 대하듯 듯했다. 나를 아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여겼다. 나에게 음식을 권할 때도 "어때 괜찮아?" 조심스럽게 물었고, 내가 살아왔던 환경, 나의 가치관, 나의 습관들을 존중해줬다.


내가 옷걸이가 필요하면 그는 옷걸이를 사다가 기숙사에 가져다주었다. 내가 아프면 병원을 알아보고, 차를 태워 병원에 데려다줬다. 그는 나에게 슈퍼맨이었고, 남자 친구였고, 아빠 같은 사람이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나의 미국 생활은 훨씬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그의 집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고, 그는 침대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나: 자기야, 나 지금 에세이 썼는데 이거 문맥이나 문법 좀 봐주면 안 돼?

그: 음…… 제이야……… 있잖아, 나는 지금 이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보고 싶어. 내가 그 숙제는 이 영화를 끝내고 봐주면 어때?

나:음……. 그래 알았어!


그는 언제나 나에게 최선을 다해줬지만, 자신의 욕구나 시간을 무조건적으로 희생하지는 않았다. 그는 본인이 기꺼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때, 본인이 하고 싶을 때 나를 도와주고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줬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지치지 않았다. 나를 위해줬지만, 본인이 손해 보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나에게 그냥 무조건 잘해준다. 내가 잘해달라고 안 했는데도, 잘해주다가 본인이 나에게 그만큼 돌려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그는 혼자 상처 받아 뒤돌아선다.

그는 이런 사람들과는 다르게 균형이 잡힌 사람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해준만큼 나에게 바라지 않았다. 인생은 모두 Give and Take라고 하지만, 그는 나를 위해주는 일들이 “Give”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원할 때 나에게 기꺼이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존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의 시간을 존중할 수 있었다.


‘아~ 지금은 저 영화가 끝까지 보고 싶구나. 숙제는 급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도와주겠지~’


그는 나보다 6살이 많았다. 한국에서 6살에 많다고 하면 꽤 차이가 나는 커플 같지만, 당시의 나는 영어로 소통해서인지는 몰라도 나이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그는 나를 나이 어린 동생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객체로서 그리고 사랑스러운 연인으로서 바라봐줬다. 나는 그를 통해 좀 더 성숙한 관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본인 스스로도 또한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며칠 전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제이야, 너는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꼭 중학생 같았는데 미국 다녀온 후로는 아가씨 티가 나더라.”

이 얘기를 미국 다녀온 9년 후에 들었다. 참 신기하게도 이 말은 마음에 와닿았고, 나의 그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음……… 고작 1년이었는데, 갑자기 아가씨 티가 난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다. 그건 아마도 나를 존중하고, 관계를 존중할 줄 아는 그의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국 남자와 헤어졌다. -마지막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