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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09. 2020

벤츠는 승차감이 아니라 하차감이라 했던가

초보 운전기

나는 내가 운전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30년을 살아왔다. 겁도 많고, 길치여서 과연 내비게이션을 볼 수나 있을까 생각해왔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왔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어릴 때 있었던 차 사고 때문이었다.


온 가족이 시골로 내려가다가 다리 위 빙판에서 차가 돌면서 다리 아래로 차가 처박히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차는 소나타였는데, 사고 후 바로 폐차를 시켜야 할 만큼 망가졌다. 차가 다리 밑으로 떨어질 때 차가 빙글빙글 도는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엄마 아빠는 힘겹게 문을 열어서 우리 삼 남매를 처박힌 차에서 끌어내시고 바닥에 담요를 깔고 차가운 빙판 위에 앉히셨다. 그리고 보험사에도 전화를 걸과 관련 기관에 구조요청을 하셨다. 다행히도 하늘이 도왔던 건지 우리 가족에게 가벼운 타박상만 남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의 뇌리에는 차사고는 죽음의 두려움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슬슬 운전이 하고 싶어 진다.

딱 30살 되던 해에 운전 면허증을 땄다. 나에게 운전이란 마지막 어른으로 가는 관문 같은 의미이다. 혼자 살기 위해서 집은 필수이다. 그런데 차는 필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차를 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 어느 정도의 활동력, 어느 정도의 시간적, 심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인 것 만 같다. 주변에서 같은 또래 친구들이 차를 끈다는 것을 들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내가 아직 통과하지 못한 관문을 먼저 통과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는 다른 여자 친구들보다 차에 과심이 많은 사람이다. 조수석에 앉을 때면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면서 ‘저 차는 앞은 예쁜데, 뒷모습은 안 예쁘네… 역시 뒷모습이 중요해!’ 하며 조잘거린다. 나는 엔진이 어떻고 연비가 어떤지는 관심이 없고………


그냥 어떤 차가 예쁜지에만 관심이 있다.

예쁜 차들을 보면서 나의 드림카는 뭘로 해야 하나. 항상 고민에 빠진다.


테슬라

작년 테슬라를 탔을 때 내가 꼭 미래 세계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로의 상황, 주변의 상황을 학습해 나가면서 대처해 나가는 것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차를 타고 가는 2시간 내내…………

'아 나도 테슬라 갖고 싶다………'를 한 1000번쯤은 생각해 봤던 것 같다.

벤츠 E-class

그러다 지나가는 벤츠 E- class를 보면……… 역시 벤츠지. 어쩜. 봐도 봐도 안 질리지? 볼 때마다 예쁘기 있기 없기? 벤츠의 유선형의 예쁜 곡선은 몸매 좋은 여자를 넋 놓고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유혹한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그러다 역시 나같이 조그만 애가 DISCOVERY

SUV같이 큰 차를 타면 정말 반전 매력 아니겠어? 산다라박이나 송은이처럼 말이지. 저런걸 진정한 걸크러쉬라고 하는건가? 크……… 멋있구만.

Volvo XC60

아니야, 아니야. 나의 안전을 생각하면 역시 Volvo 아니겠어? 사망률 0%를 추구한다잖아. 얼마나 자신있으면 저런 목표를 설정하겠어. 조금 투박하긴 하지만 XC60봐봐 잘 보면 또 예쁘잖아???  


포르쉐 타이칸

그러다 지나가던 포르쉐를 보면 포르쉐 타는 여자라니… 너무 섹쉬하지 않아??? 포르쉐는 역시 블랙이지. 저건 진짜………………… 넘사벽이다.

하차감 장난 아니겠는데??


이렇게 나의 드림카는 매일 매일 바뀌고, 머리 속에는이 차들을 비교하느라 바쁘다.




 아직 운전조차 미숙하면서 내가 어떤 차에 올라타야 멋있을지 그 고민만 매일 하고 있다. 그런 내가 요새 가끔 운전을 해본다. 차가 도로에 없을 때, 시골로 드라이빙을 갔을 때, 넓은 주차장을 발견했을 때. 운전대를 잡아본다. 운전대만 잡으면 막 가슴이 뛰고,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나면 ‘나 좀 멋진대’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이번 여름 휴가로 정선에 다녀왔다. 가다가… 차가 없는 도로를 발견했을 때 그가 물었다.


“제이야 너가 운전 해볼래?”


“나나나나나?????? 나???????????? 진짜??? 나 해볼래!!!!! (오예)”


“그래. 내려. 자리 바꾸자.”


“오빠 오빠 근데 있잖아, 브레이크가 오른쪽 맞지???”


 “............ 다시 조수석 타. 빨리 타. 딱 타. 조용히 안전벨트나 매고 있어. 목숨은 두개가 아니라, 한 개니까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나 살고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농담이야^_^ 장난도 못치겠네. OKAY?”


그리고 그 한적한 시골길을 유유히 운전해봤다. 옆에 차가 지나가는 것도 경험해 보고, 내가 천천히 달리니까 뒷차에게 먼저 가라는 신호도 주고, 그 도로 위에서 다른 차들과 소통하면서 그렇게 차를 운전해 봤다. 핸들을 오른쪽을 돌리면, 차가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가는 그게 뭐라고 새삼 신기했다.


뭔가 내 활동력과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배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매일 매일이 배움이고 매일 매일이 어른에 다가가기 위한 한발자국 이었다.


차에서 내릴때의 그 상쾌한 하차감이란…… 꼭 한편의 영화를 몰입해서 본 후에 몰입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작은 것이었지만 뭔가를 해낸 것만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다리 밑으로 쳐박힌 차 속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6살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두려움에서 한발자국씩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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