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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14. 2020

팀을 떠날 때 해맑게 팀장 엿 먹이는 방법

계산된걸까, 자신도 모르게 나온걸까?


이 글은 회사에서 옆 팀 대리님의 이야기다. 이 얘기를 글로 써도 되겠냐는 질문에 흔쾌히 영광이라고 말해준 대리님께 감사의 인사를 표지로나마 전한다.


E대리님은  좋은 목소리에 젠틀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내가 속해있는 인사팀에 있다가 총무팀으로 이동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더 친근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 그저 인사하는 사이었다.


그의 문제는 팀장님과의 관계였다. 나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기만 한 그 팀장님을 총무팀 팀원들은 정말 치를 떨 만큼 싫어했다. 그래서 E대리님은 매번 사내 공고가 뜰 때마다 지원했다. 총무팀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직도 준비했었는데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는 않아, 본인이 살길은 사내 채용으로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정말 필사적으로 준비했던 것 같다.


그렇게 3년을 버텼던 그가 결국 사내 채용으로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다. 사내 채용은 보통 해당 팀장님들에게는 Confidential 하게 진행되고, 사내 채용이 확정이 되면 그 팀장에게 통보를 한다. E대리의 케이스도 마찬가지로 인사팀에서 총무팀 팀장님께 그 대리가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다는 전보 확정 통보를 하였다.


총무팀장님은 그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먹은 듯했다. 팀원이 본인 모르게 사내 채용을 지원한 것도, 그리고 실제로 다른 팀으로 가게 된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팀장님은 삐졌다.

E대리가 다른 팀으로 옮겨가기 이틀 전………… 엄청난 갈굼이 이어졌다.


“너는 정말 인생 그렇게 살지마.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니? 네가 가는 마당에 내가 이런 말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E대리를 세워놓고 한 10분 동안 팀장의 연설이 이어졌다. 거리가 꽤 멀었는데도 나에게까지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들렸다. 나였으면 굉장히 치욕스러웠을 것 같다. 그 팀장님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어떻게 저 얘기를 듣고 저렇게 서있을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대리님이 새삼스럽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후에 엘리베이터에서 그 대리님을 만났다.


나: 대리님 진짜 멘탈 대단하네요.


E대리: 이제 다 끝난 걸요. 내일이면 해방입니다.


나: 그래요. 축하해요!


그리고 다음날 그 대리님이 팀을 옮기기 하루 전날이 되었다. 갑자기 그 팀장님이 그 대리님에게 회상 회의 시 굉장히 다정하게 얘기를 했다.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하는 인원들이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나는 E대리의 바로 앞자리이기 때문에 화상회의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팀장: 그래 그럼 마지막인데, 팀원들에게 한마디 하는 게 어때?


E대리: 아, 네 알겠습니다.


팀장: 그래.


E대리:  옛말에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께 드리는 인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간에 팀장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도움 잊지 않고 새기겠습니다.


제가 받았던 도움만큼 저도 다른 분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가시는 길에 행운에 가득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이 팀에서 배웠던 경험과 지식들, 어디 가서도 누가 되지 않도록 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 이야~ 너 준비했니? 정치인 해도 되겠다. 청산유수네.


E대리: 아,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팀장: 그런데 팀원들한테 한 마디 하라니까, 왜 나한테 한마디를 해.


E대리: 아, 팀원들은 앞으로도 종종 볼 겁니다.


팀장: ……………………………?


, 나는 그럼 안보냐……………………….??????


E대리: …………………………아………………


나는 정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당황하는 그 반응이 더 웃겼다.

옆 팀 회의를 훔쳐 듣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을 참아야 했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지금 굉장히 지능적으로 팀장님을 엿 먹인 건지 아니면 본인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온 건지 전혀 구분이 안 갔다. 그리고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는다. 내가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계속해서 매일매일 반복된다.

그 전날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훈계를 듣던 그가 마지막 팀장에게 어퍼킥을 날리고 가는 모습에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청량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웃긴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좀 친해질걸 하는 아쉬움도 함께 남았지만,

그래도 그를 위해서 그를 놔줘야 할 때가 맞는 것 같다.


"대리님 다른 팀에 가서도 그렇게 해맑게 잘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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