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현대를 살아오면서 나도 자라 어른이되고
가정을 꾸리고 맞벌이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식사라는 것은 귀찮거나
먹어치워 버리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집안일도 분업이 되어있어
나는 식사당번이 되었는데
두 식구 뿐이라 해먹는 음식도
간단하게 치우기 편하게가 기본이다.
볶아먹든 찌개를 하든 주요리랄 것도 없지만
어묵탕, 떡볶이, 캔꽁치찌개, 고추장찌개, 고기나 햄과 쌈 등
주로 먹는 반찬 하나로 밥을 해치운다.
먹고나면 벌떡벌떡 일어나 찬기를 설거지통에 담그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각자 할 것들을 한다.
텔레비전이든 라디오든 방송매체나 책을 보면 어릴때 엄마가 해주신 음식이라던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시집장가를 갔는데도 친정에서, 시댁에서 바리바리 싸주시는
음식에 대해서 말이 많다.
맛있다. 맛없다. 입맛이 다르다. 하시지 말라는데도 기어코 하신다. 버린다. 싸운다.
스트레스다. 맛이 달라졌다. 좋다. 역시 엄마것이 맛있다. 등등
나와는 전혀 별개의 동감 할 수 없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일상이다.
나의 시어머니와 엄마는 자식들의 반찬이나 땟거리에 관심은 있지만
"잘 해먹고 사느냐?"에서 그칠뿐이다.
시절이 되서 뭔가 먹어야 할 땐 삼계탕에 무엇무엇을 넣어먹으면 더 맛있다.
지금은 배추, 무 철이라 달고 맛있다. 등등 신명나게 얘기하시다가
"거기도 다 팔재?."
"해먹재?" 까지다.
애가 닳아서 이것저것 챙겨주시거나 보내주시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내겐 엄마가 해준 추억의 음식이라던가 그런게 없는것 같다.
이것 만큼은 우리엄마가 최고지 이런 음식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원망스럽다거나 섭섭하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한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나와 내동생을 길러냈고
육아와 직장, 집안일을 다 잘할수 없는것이 자명하기에
부족한것은 부족한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곱씹어보면
내 추억 속에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밥 한공기 정도는 있다.
물론 주인공은 엄마가 아니다.
시골에 사시던 할머니는 신혼초에 함께 살다 분가해 도시로 나간 아들내외가 주말
마다 내려와 함께 지내는게 좋으셨을게다.
말도 안듣고 개구져 사고만 치고 뛰어 놀기 바쁜 날다람쥐같던 사촌 오빠들만 보다가
결혼하고 3년이나 기다려 얻은, 품에 쏙쏙 들어와 과자하나도 할머니 입에 먼저 넣고 제입에
넣는 곰살맞은 손녀가 좋으셨을 거다.
할머니는 옛날분이라 남존여비가 강해 밥상도 며늘, 아들들, 큰아들과 아버지의 상이 달랐는데
도시에서 내려오는 둘째 아들 내외를 위해서는 늘 새로 밥을 지으셨다.
애하나는 너끈히 들어갈 커다랗고 검은 솥에 꼭 새밥을 지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찮으셨을텐데도 할머니가 차려오시는 하얀 쌀밥은 항상 김이 모락모락 했다.
나는 어렸지만 김치를 좋아해서 할머니는 나를 더 이뻐하셨다.
다른 손주들은 김치와 생선국과 호박나물과 등등을 내오면 밥을 안먹고 내빼기 일 수인데
조막만한 계집애는 밥상 앞에 다부지게 앉아서 김치만 얹어주면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잘도 받아
먹는 것이었다.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쪽진 할머니가 내 곁에서 김치는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며 줄기에서부터
잎까지 죽죽 찍어 얹어주셨다. 그렇게 한그릇을 먹고나면 나는 코스모스든, 콩벌레든, 사촌오빠든 찾아 밖으로 나가고 할머니는 또 할머니의 일을 했다.
주말이 지나 도시로 나올때 쯤엔 할머니는 항상 엄마에게 김치한통을 주셨다.
손녀가 김치를 좋아하니 통에 많이 안들어 갈까봐 김치 대가리는 모두 잘라내고 차곡차곡 입구까지 곱게 포개서 아들내외에게 들려주셨다.
나는 여전히 김치를 좋아한다. 지금은 할머니 김치의 맛이 무슨맛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삼삼한 맛인지, 굵은 고춧가루가 씹히는 맛인지, 매콤한지, 시원한지, 생강맛이 많이 나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 김치를 다시 먹게 되면 그것이 할머니의 김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슬슬 배추가 다 절여진것 같다.
나의 김치는 할머니의 김치와 많이 닮아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