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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Apr 06. 2019

종차별에 반대한다

피터 싱어, <동물 해방>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을 읽고 나면 한 가지 개념만은 확실히 뇌리에 박힌다. 종차별주의(speciesism). 종차별주의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전제에서 동물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신념체계로,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더가 제안한 개념이다. 피터 싱어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공리주의에 비춰볼 때 동등 배려 원칙에 위배되는 종차별주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실현을 목표로 한다. 동물도 행복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존재라면 인간에게 차별 받을 이유가 없다. 피터 싱어는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종차별주의를 비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이 책의 미덕이라면 감정이나 정서에 호소하지 않고 논증을 통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 나간다는 점이다. 동물에 대한 애정과 동정심에 기대어 동물 해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피터 싱어가 쓴 서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애완동물에 대해 쓴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사랑이 단순히 고양이를 어루만져 준다거나, 정원의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읽으라고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억압과 착취가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에서건 이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익에 대한 동등한 고려라는 기본적인 도덕 원리를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 종 구성원에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전반적으로 싱어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공리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보니 논의의 폭이 한정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피터 싱어는 동물에게 고통이 가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 여부를 논의의 주요 판단 근거로 삼는다. '고통의 감소' 측면이 주요하게 다뤄지므로 동물에 대한 시혜적 관점을 부각시킨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보다 실질적인 동물권 입장을 정립한 이는 미국 철학자 톰 리건으로 알려져 있다. 톰 리건은 동물 역시 '삶의 주체'라는 점에서 본래적 가치를 존중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권 운동 내에서 이러한 개념 차이로 동물 복지 진영과 동물 권리 진영이 입장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대표적인 동물권 단체의 하나인 '동물권행동 카라'의 경우 지난해 전신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 단체명을 변경했는데 그 이유도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물권 단체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책에는 피터 싱어가 기존 동물권 단체들에 대해 비판을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부분에 상당히 날이 서 있다. 동물권 단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회원 수가 증가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급진성을 상실하고 체제의 일부가 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캠페인에 주력하게 된다는 게 비판의 골자인데 내가 체감한 바로는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동물권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한국 내 주요 단체들의 활동이 반려동물과 유기동물, 개농장 문제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아쉬움을 잘 대변해주는 구절들.


이들 단체들은 재력을 갖고, 회원수가 증가하고,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서서히 자신들의 급진적인 정신을 상실하였으며, ‘체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관료, 사업가, 과학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으며, 그들과의 접촉을 통해 동물의 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동물을 식용이나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데 근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 창립자들을 고무했던 동물 착취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의 칼은 무뎌지게 되었다. (p.369)
이로 인해 그들은 잔혹한 처우에 대항하는 조직적인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벌이는 대신, 유기견을 거두어들인다든가, 개인의 이유 없는 학대를 고소한다든가 하는 안전한 활동에 맞추게 되었다. (p.370)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단체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직원들이 도시 출신이며, 이로 인해 돼지나 송아지보다는 개와 고양이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떠하든, 현 세기의 대부분을 통해 전통적인 동물 복리 재단이 펴낸 문헌과 홍보 활동은 개와 고양이, 그리고 야생 동물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류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른 동물들은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동물 복리’라는 이념을 정의와 도덕성의 기본 원리에 바탕을 둔, 지향해야 할 목표로 생각하지 않고, 고양이를 너무나도 귀여워하는 상냥한 부인들에게나 어울리는 태도쯤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p.370)


아, 당연한 귀결이지만 우리는 왜 채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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