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여행의 시작

비 온 뒤 거리를 거닐다

by 소로


지난밤 처음 발을 디딘 낯선 땅, 밤 거리는 온통 비로 젖어들고 있었다. 공항 밖을 나서려는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멕시코시티. 아무런 연고도 기억도 없고 어떠한 환상도 품은 바 없는 이곳에 나는 왜 있는 걸까. 16시간을 날아와 시차 적응에 괴로워하며 잠 못 이룬 밤, 내내 이런 의문이 날 괴롭혔다. 불현듯 외로움이 밀려왔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조금은 덜했을까. 하나 마나 한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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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어두운 빛이 점차 푸른 빛깔로 변해 갈 때까지 수십 번을 뒤척이다 결론을 내렸다. 아직 이 낯선 땅에서 맞이한 밤의 리듬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이라고. 끊임없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던 사이렌 소리와 탄식을 내뱉듯 쓰레기 수거차가 내는 육중한 기계음이 뒤섞인 불협화음도 밤새 전신이 깨어있게 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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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좀 더 저렴하면서도 더운 물이 잘 나오는 곳으로 숙소를 옮겼다. 무엇보다 조용한 점이 마음에 든다. 거리를 걷다보니 곳곳에 무장 경찰들이 보인다. 특정 상점이나 레스토랑, 숙박업소 앞에는 이들이 배치돼 있다. 총을 든 군인들도 눈에 띈다. 멕시코는 위험하고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조금 실감이 난다고 해야 할까.


멕시코에 다녀온 한 지인이 “여행 중 아무 일 없었어, 전혀 위험하지 않아” 하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아무 일 없었다고 위험하지 않다거나, 어떤 봉변을 당했다고 해서 위험하다고 단정하는 건 곤란하다. 어느 곳이든 위험하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저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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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지 않은 풍경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제가 된다. 달라스를 경유하는 시점부터 멕시코시티로 날아온 이후 지금껏 동양인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혼혈 메스티소와 원주민, 일부 백인들 틈에서 홀로 유유자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이질감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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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언어가 안 되는 나로선 영어와 스페인어를 우스꽝스럽게 조합해 생존 회화를 구사할 수밖에 없는데 저쪽에선 내가 알아듣건 말건 자기네 말만 한다는 사실. 못 알아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해도 막무가내다. 말의 속도도 여간 빠른 게 아니다. 어느 상점에서 만난 점원이 “너 치노(중국인)야, 꼬레아노(한국인)야?’라고 묻는 정도가 나로선 놀랍고 반가운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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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꽤나 우중충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람들 표정에는 활력이 넘쳐 보였다. 공원을 지나다가 비트를 깔아놓고 프리스타일 랩배틀을 벌이는 무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비록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재치 있는 말장난이 오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웃음은 전염된다고, 유쾌하게 웃는 사람들 틈에서 절로 웃음이 났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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