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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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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Feb 25. 2020

그곳에는 검은 물결이 출렁였다

#꿈의 기록: 꿈속 여행길서 본 탈주 행렬

우리는 여행 중이었다. h와 친구 p군이 여행길에 동행했다. 우리는 어느 도시의 번화가를 누비고 다녔다.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지나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는 육교의 층계를 올랐다. 일행의 뒤를 쫓던 나는 그들과 갈라져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홀로 다른 길을 택했기에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홍콩에서 본 듯한 거대한 쇼핑몰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는 아직 육교 위에 있었다. 몰을 바라보며 천천히 육교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건물 뒤편으로 갑자기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즉각 쿠바 아바나에서 봤던 말레꼰 해변을 연상했다. 다만 이곳은 무서우리만큼 칠흑같이 검은 바다였다. 바다 너머에는 쿠바가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 쿠바가 인접한 지형이 되었다. 건물 반대편 번화가 쪽 길에 면한 곳은 홍콩인들로 번잡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쇼핑몰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는데 안쪽으로 접어들면 음식점으로 갈 수 있었다. 어느 식당에 들러 내부와 메뉴를 살펴보기도 했다. 걷다가 마주치는 행인 중에 내게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묻는 이들이 많았다. 계단을 내려와 어느 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바다가 면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바다에 다가서자 다소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바리바리 싸든 짐을 물 위에 띄우고 바다를 건너오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잠시 걸음을 멈칫했다. 비교적 근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었고 깊이도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저러한 행렬이 정상적인 루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해. 배도 없이 어떻게 맨몸으로 바다를 건널 생각을 한단 말야. 저렇게 바다를 건너다가 당국에 발각되면 저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그저 바라볼 뿐 한마디 말을 건네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중도시처럼 건물은 바다에 직접 면해 있었고 넘실대는 검은 물결이 연신 밀려와 건물 아랫쪽에서 부서졌다. 건물 벽에 기대어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두어 명이 그룹을 이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쿠바인들, 끊임없이 너울거리는 검은 바닷물.


그 순간 어디선가 일행이 나타났고 우리는 다시 번화가로 나아갔다. p가 돈이 부족하다며 환전하자고 제안하자 h는 아직 현금이 충분하다며 필요하면 주겠다고 했다. 나는 p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h가 쓸데없이 착하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툴툴댔다. 그런데 왜 이들은 바다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걸까.  




칠흑같이 검은 바다의 풍경. 꿈속에서조차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필사의 탈주가 이어지는 바다의 정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생존욕이 있을까.


2020년 2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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