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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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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Feb 29. 2020

꿈은 늘 제멋대로다

#꿈의 기록:  파편화된 꿈, 기억을 수집하며


요사이 꿈을 자주 꾼다. 흥미로운 현상이다. 꿈 내용을 곱씹음으로써 그 안에 잠재된 생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아니다. 꿈 분석은 내게 큰 흥미거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꿈을 꾼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중요하다. 꿈에 나오는 장면과 상황 들이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꿈을 자주 꿨고 내용도 잘 기억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꿈을 잘 꾸지 않게 된 것 같고 꿈을 꾼다는 자각 자체가 희미해졌다.


20대 땐 불안감이 커서인지 잠을 잘 못 이루거나 가위에 눌리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잠을 아주 잘 자기 때문이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이 올 정도다. 잠을 잘 못자는 아내가 신기해 할 만큼 잘 잔다. 그래서일까. 꿈을 자주 꾸던 시기에 꾼 꿈들을 수집해 놓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이제라도 꿈을 꾸면 최대한 기록해서 잡아두고 싶다.




지난밤에도 꿈을 꿨다. 꿈의 내용은 이미 대부분 휘발되고 말았다. 몇몇 장면이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전체 기억을 되살리긴 어렵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을 헤집어서라도 더 많은 기억의 파편을 들추어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좀처럼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꿈에 엄마가 등장했다. 우리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엄마가 운전하고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내가 뒷자리에 있다니 어린 시절에나 그랬을 법한 상황 아닌가. 초등학생 시절 동생과 나는 엄마가 운전하는 차 안 뒷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곤 했다. 아무래도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럴 일이 없다. 꿈에서 뒷좌석에 앉은 나는 삼분의 일가량 열린 창문에 재킷을 걸쳐두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으므로 창문 틈으로 빗방울이 튀었다. 나는 창문에 걸어둔 옷을 만지작거리며 빗방울이 튀지 않게 막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엄마와 나는 무슨 말인가를 계속 주고받았다.
장면이 바뀌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집 안에 있었는데 나는 다른 곳에 있다가 엄마를 내버려 두고 있었다는 생각에 엄마를 찾으러 다녔다. 널찍한 거실로 가보니 상을 다닥다닥 붙여놓고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틈에 앉아 있는 엄마가 눈에 띄었다. 마침 엄마 맞은편에 빈자리가 있어 거기 앉았다.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내게 호기심을 보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꿈에 엄마가 종종 등장하는 걸 보면 엄마의 존재가 무의식에 얼마나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가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엄마는 늘 나를 이끌려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창밖에서 빗방울이 새어 들어오는데 왜 나는 창문을 닫을 생각을 못했을까.


예전 회사 동료 j와 어떤 남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한 공간에 함께 있었다. 어느 집 안이었는데 복잡한 구조를 지닌-아마도 2층 규모의- 작은 집이었다. 집은 복층 구조였다. 1층 계단 옆에 넓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나는 거기 파일 더미가 들어 있는 박스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가 그런 내게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고, 내 뒤에 앉아 있던 남자가 파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본인이 오랫동안 취재해서 조사한 내용이고 매우 중요한 사안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였다. 파일마다 사건의 제목이 적혀 있는 듯했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집에 누군가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 도착했나 보다." j는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 톤으로 그렇게 말하며 부엌 쪽에 있는 어느 문 틈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곳이 2층으로 통하는 공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꿈에선 꽤 미스터리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나는 어떤 역할을 하기보단 상황을 바라보고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화자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와 별개로 꿈에서도 j의 쾌활한 면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j는 어떻게 늘 일관되게 긍정적이고 활기에 찬 에너지로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걸까.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할 때 꿈 전체가 아니라 꿈의 내용을 이루는 부분들에 주목했다. 꿈을 꾼 사람에게 기억나는 꿈의 단편마다 누가 떠오르는지, 어떤 사건이 떠오르는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연상하게 하고 그런 생각들을 연결하여 통합하는 방식으로 꿈을 분석했다. 그런 식으로 하는 이유는 프로이트가 꿈을 한 가지 사건이 표현된 것으로 보지 않고, 서로 상관없는 여러 사건의 파편들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꿈은 내 머릿속의 사고 활동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지만 잠재적인 생각을 모두 표현해 주지 않는다. 꿈에 나오는 것들은 내가 사고하는 바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므로 꿈은 서사적으로 불충분하며 비논리적이고 무질서하다. 무의식이 펼쳐놓은 부조리극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모든 기억을 복기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겠다. 이런 식으로 거창한 목표 없이 파편화된 꿈의 기억을 계속 수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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