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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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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Mar 09. 2020

어느 기숙학교의 하루

꿈의 기록

어느 기숙학교 같은 곳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우리는 반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는 와중에 선생님이 학보사 신문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했다. 나를 포함하여 신문을 만드는 학생들이 우리 반에 다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학보사 주간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이번 호 신문에 각 지자체 시장 인터뷰를 특집으로 싣는데 기사가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 그 꼭지를 맡은 학생은 학보사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이었는데 그 자리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에서 그 신입 학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교사의 지적을 듣고 기분이 상한 듯 불만에 찬 목소리였다. “나 없으면 어떻게 쓰려고? 나 없으면 어떻게 쓰려고 그래?” 이 말을 하며 신입이 교실에 들어왔다. 남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여자였다. 몸집이 나보다 컸다. 아니꼽다는 듯 불쾌해하는 기색을 만면에 띠고 있었다.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학생의 오만한 말투가 거슬렸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귓가에 속삭이듯 나지막이 말했다. “너 말을 좀 심하게 하는구나.” 이를 본 아이들이 자극을 받았는지 신입 학생 주위로 몰려들어 아우성치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해댔다. 막상 또 한 사람을 둘러싸고 그 난리를 치는 광경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시 후 다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내 짝의 스케치북을 들춰보며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그림 진짜 잘 그리네.” “오, 이 그림 좋은데!” 하지만 정작 그 친구는 말이 없었어. 묵묵부답. 자식, 제법 시니컬하네. 나는 그만 머쓱해져서 앞뒤 친구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어느덧 학교 주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취침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 채비를 했다. 희한하게도 실내가 아닌 건물 밖 콘크리트 바닥에 각자 이불을 깔아놓은 상태였는데 그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들 누워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떠 있는 하늘을 본 게 얼마만일까. 잠시 그런 상념에 젖어들었다.


찬찬히 건물에 시선을 돌렸다. 유럽의 전통 있는 명문학교 스타일이라 해야 할까. 물이 굉장히 예스럽고 웅장해 보였다. 밤하늘과 주변 풍경을 훑어보고 있는데 내 짝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녀석은 혼자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그러자 나도 화장실에 다녀와야 할 것만 같았다. 귀찮았지만 망설임 없이 일어나 건물 입구로 향했다. 건물 내부는 호텔이나 쇼핑몰을 연상케 할 만큼 규모가 상당했으며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는데 꽤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소변기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오른편의 좌변기가 있는 칸에서 인기척을 느꼈어. 분명히 짝일 거라 생각했다. 그 친구가 일을 마치고 나올 때 마주치면 껄끄러울 거 같아 좌변기 칸에서 해결할 요량으로 칸을 살폈다. 전부 수세식 변기였는데 죄다 뒤처리를 왜 그 모양으로 해놨는지 모든 칸이 질척질척하고 엉망이었다. 끔찍했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칸에 들어가 소변을 보려는데 신발에 안 닿게 하려고 용을 썼다. 한쪽 발을 들어 벽에 걸친 채 일을 보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기괴한 자세였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정면에 작은 창문이 나 있었고 양쪽 벽에 샤워기가 매달려 있었다. 샤워기에서 물이 똑똑 새어 나왔다.


화장실을 나오자 버스 터미널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야 하는 생각에 버스 탑승구를 찾아 헤맸다. 출발시각이 임박한 상태였고 다급하게 버스 탑승구를 찾아 헤맸다. 버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어쩔 줄 몰랐다. 왜 나는 고작 버스 탑승구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는 걸까. 그런 자괴감이 나를 휘감았다.

 



꿈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흠칫하게 된다. 상대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내 말이 주변인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관심을 두고 있다는 방증일까? 어쩌면 요즘 내가 고민하는 바와 맥락이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평가하는 이런저런 말들로 인해 피로감을 느낄 때가 많다. 주로 논평하는 이의 옹졸함과 편협함이 드러날 때다. 그게 불편하다 싶으면서도 그걸 지적하는 나의 태도나 관점에는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 그리고 건물 안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꿈에 관한 해몽을 찾아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뭔가 좋은 조짐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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