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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Mar 01. 2020

그는 왜 빙하 탐사에 매달렸나

<빙하를 따라서>(2012)


넷플릭스에서 본 인상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빙하를 따라서>(원제: Chasing ice)는 제목 그대로 빙하에 관한 다큐다. 극지방 얼음 지대의 풍광을 따라가긴 하지만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화면 속 풍경은 암담하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붕괴되고, 무너지고, 사라져 가는 과정을 내내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빙하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미국의 사진작가 제임스 발로그의 행적을 좇는다. 극지방을 찾아다니며 빙하 사진을 찍는 과정은 고난 그 자체다. 드라마틱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발로그와 그의 팀은 험난한 얼음 지대를 숱하게 지나야 한다. 수년에 걸쳐 극지방을 오가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사진작가의 무릎은 성할 날이 없다. 무릎 수술의 여파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경에도 처한다. 그런데도 그토록 그가 빙하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제임스 발로그는 한때 기후 변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지녔다. 그는 2005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대해빙(Big Thaw)’ 기획을 통해 북극의 빙하 사진을 찍으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아이슬란드 솔하임 빙하가 매년 수십 미터씩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 발로그는 빙하의 변화를 좀 더 면밀하게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극지 빙하 조사단(EIS・Extreme Ice Survey)을 만든다. 조사단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알래스카 등 주요 빙하지대에 카메라 수십 대를 설치해 수년간 저속촬영을 시도한다. <빙하를 따라서>는 제임스 발로그가 세계 각지의 빙하를 따라다니며 변화를 추적한, 집요함의 산물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가 각지의 빙하에서 얻은 방대한 양의 기록 사진을 각종 강연장에서 공개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한 순간이다. 거대한 빙하 지대가 보다 빠른 속도로 수축하고 후퇴하는 과정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장면에선 한시도 눈을 떼기 힘들다. 특히 그린란드 서쪽 해안의 빙하 지대 일룰리사트에서 대규모의 빙산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뒤집히고 요동치는 장면의 스펙터클이 압도적이다. 지구의 얼음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지를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시각적 증거다.  


영화는 통계가 어떻고 수치가 어떻다는 식으로 데이터를 논해봐야 인간이 직접 경험하고 수집하여 얻은 시각적 자료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걸 증명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전 지구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사진만 한 것이 없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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