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구아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

과테말라 안티구아

by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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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의 옛 수도이자 과테말라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로도 잘 알려진 곳, 안띠구아. 소도시이긴 하지만 산 뻬드로에 머물다 와서인지 비교가 무의미할 만큼 크다는 인상을 받는다.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 잘 정돈된 돌길, 즐비하게 늘어선 카페와 음식점, 상점 들. 이곳이 관광 명소라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16세기 중반 스페인에 의해 건설되어 200여 년간 번영했던 까닭에 곳곳에 잔재가 남아있다. 식민지 개척시대의 건축물, 지진으로 허물어진 성당, 고풍스러운 주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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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메이션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중년의 현지인 남자 두 명이 내게 다가왔다. 인포메이션을 찾느냐고 묻길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니 그곳 직원들이었다. 나는 인포메이션 앞에서 헤매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숙박할 곳이 있느냐고 묻고는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숙소가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가는 길에 직원 중 나이가 좀 든 사람이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스페인어는 할 줄 아느냐, 어디서 왔냐, 여긴 얼마나 있을 거냐, 구경하고 싶은 곳이 있느냐, 안티구아 다음엔 어디로 갈 거냐 등등. 평소에도 여행자에게 숙박 업소 안내까지 해주느냐고 내가 묻자 그게 자기들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쎈뜨로 주변에는 비싼 호텔들이 많지만 저렴한 프라이빗 룸을 보유한 호스텔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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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데려간 곳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의 게스트하우스였다. 내가 알아본 숙소의 도미토리보다 더 싼 가격에 더블룸을 잡을 수 있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여성 주인과 직원 한 명만 있었다. 친절하게 맞아주는 주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 더 고민하지 않고 이곳에 묵기로 결정했다. 숙소에 나 말고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나는 화장실이 달린 큰 방을 썼다. 시설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모든 걸 나 혼자 누리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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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거리로 나왔다. 숙소 주인인 끌라우디아가 이것저것 표시해준 지도를 보며 걸었다. 멕시코 와하까의 이미지와 겹치는 느낌도 있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부지런히 걸어다녔다. 강렬한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다가도 어느 순간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비가 쏟아진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쾌청하고 오후가 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다. 순간순간 정전도 일어난다. 이곳에 온 첫날,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가 밤 사이 폭우로 변했다. 빗소리가 워낙 커서 겁이 날 정도였다. 게스트하우스 지붕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싶어 잠을 설쳤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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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퇴근길 인파가 몰리던 시각,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나는 숙소로 향하는 길에 끌라우디아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어딘가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의 행색이었다. 그녀의 사정은 아는 바 없었지만 뒷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는 모습에서 뭔지 모를 세상살이의 피로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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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장에 들러 사과와 바나나를 샀는데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과일을 먹으려는데 이곳 식구들도 저녁을 먹으러 주방으로 나왔다. 끌라우디아와 남편, 다섯 살 먹은 딸 린시, 그리고 순박한 인상의 여성 직원 한 명까지. 그들은 또르띠야와 빵, 햄 등을 펼쳐놓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과일을 먹었다. 그들은 평소 저녁을 가볍게 먹고 점심을 다양하고 푸짐하게 먹는다고 했다. 화산 투어 이야기가 나오자 몇 년 전에 파카야 화산에서 큰 폭발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찾아보니 정말 그렇다. 최근 푸에고 화산에서도 폭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식사 시간 내내 어린 딸의 재롱과 율동까지 볼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한 가족의 일상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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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게스트하우스에서 마련해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비누를 사러 메르까도(시장)를 뒤지고 다녔다. 크기가 가장 작으면서 싼 비누를 사는 게 목표였다. 한 상인이 더 작은 비누 파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가 알려준 곳에서 가장 싼 가격에 비누를 산 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활보했다. 여행지에서 하는 생각과 고민이란 어쩌면 이토록 하찮은지.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원초적인 고민들.


종종 마주치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은 대개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곤니찌와" "니하오" 안티구아 거리를 걷는 동안 종종 들었던 단어다. 어느 하루만 두 명의 일본인이 “곤니찌와”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중 한 명은 반색을 하며 “니혼진 데스까?” 하고 묻기도 했다. 잠시 눈이 마주친 한국인 한 명도 있었지만 그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다. 그 무심한 눈길의 잔상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시장에서 한 상인이 어디서 왔냐고 물은 적도 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그럼 가라테를 할 줄 아느냐고, 흉내까지 내며 물었다. 그 태도가 나를 조롱하려는 건지 호의로 그러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가라케가 일본의 것이며 태권도가 한국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복 입고 있는 학생들이 나를 보며 “치노, 치노”하며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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