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꿈의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 Mar 20. 2020

동창들

꿈의 기록

길을 가다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은 주상 복합 건물 안의 어느 매장 앞에 놓인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친구가 빵집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빵집 셰프 차림이었다. 빵집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김명인 베이커리’라고 했다. 나는 반색하며 말했다. 정말 잘 되었구나. 수제 빵집 그런 건가? ‘명인 ㅇㅇ’ 류의 상호 많은데 여긴 진짜 네 이름을 넣은 거잖아. 명인이 명인을 운영하게 됐으니 참으로 멋진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 명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창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크게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은근히 자부심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창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느새 우리가 있던 곳은 연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들 명인의 베이커리 개업을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동창 중에 H도 눈에 띄었다. 가슴께가 깊게 파인 핑크빛 옷을 입고 있었는데 재질이 매우 얇아 시종 나풀거리는 까닭에 유두가 노출되는 그런 옷이었다. 너드 같은 구석이 있는 친구의 평소 이미지와 괴리가 컸을뿐더러 의상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파격적인 비주얼이었으므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 난감했으며 마주 보고 있자니 괴로웠다. 나는 놀라며 옷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런 옷은 어디서 난 거야? 어떻게 이런 옷을 입을 생각을 했어? H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연회장은 조도가 낮은 편이었고, 푸르스름한 조명 빛으로 인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수십 개의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는 홀 안은 턱시도를 차려입은 사람들로 붐볐다.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웨이터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고 나는 잠시 그런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힘겨워하는 나로선 어색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은연중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우아한 차림, 그들이 이룬 성취와 나의 처지가 대비됨을 느끼며 자괴감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으며 저들에 비해 한없이 뒤처져 있을 뿐이라는 못난 열패감.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의 부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