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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Nov 23. 2020

계절 장애 증후군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고 있음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우선 밤중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집안 곳곳에 스민 한기가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편이어서 집안엔 늘 냉기가 가득하다. 그렇다 보니 몸은 한껏 움츠러들고 계절성 비염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 비염이 정말 심한 사람들에 비하면 정도는 덜한 편이지만 심할 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지경에 놓이기도 한다. 기온 변화가 심할 때 증상이 심해지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이런 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되면 삶의 의욕마저 꺾이기 쉽다.


얼마 전, 베란다에 보관돼 있던 온열 매트를 꺼냈다. 밤중에 깨어나는 일만은 없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꽤나 번거롭게 여겨졌다. 사소해 보이지만 의외로 손이 많이 가고 온몸을 다 써가며 해야 하는 일인 까닭이다. 침대에 깔려 있던 요를 걷어내고 온열 매트에 커버를 씌워 매트리스 위에 깔았다. 그런 뒤 이불과 베개를 정돈했다. 이불과 베개 커버도 바꿀까 고민했지만 그러면 일이 너무 커질 거라는 생각에 일단 미뤘다. 걷어낸 요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침구도 전부 세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침구를 세탁하려면 한 번에 모든 걸 처리할 수 없으므로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불 종류별로, 색상별로 한 번에 하나씩 해야 한다. 나는 그 모든 걸 마무리하기까지 여전히 남아 있는 이불, 그러니까 자기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빨랫감을 생각하느라 압박감에 짓눌리게 될 것이다. 빨래를 말리는 것도 문제다. 빨래를 말릴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여러 날에 걸쳐 세탁을 해야 한다. 그동안 이불 외에 다른 빨래는 하염없이 뒷전으로 밀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작은 집에서 이불 세탁을 하기란 여간 번거로운 문제가 아니다. 


외출 준비를 하면서 비염 약을 먹었는데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효가 어찌나 센지 약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이 나른해지고 사지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었다. 점퍼를 걸치고 나갈 준비를 거의 마쳤음에도 몸을 지탱할 최소한의 기운마저 상실하고 있음을 느끼며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상태로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미 상당 부분 의욕을 잃은 상태였고 이대로 하루가 무기력하게 끝나고 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약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을 핥고 다니는 동안 나는 더욱 몽롱해지고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리란 무력감이 잔잔한 파도처럼 나직하게 밀려왔고 나는 발등부터 서서히 잠겨 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당장 해야 할 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하나둘 떠올리며 실낱같은 의지에 불을 지피려 애를 썼다. 간신히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려야 할 생활 쓰레기와 음식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한 짐 짊어지고 현관을 나섰다. 한기가 가득한 집보다는 밖이 오히려 덜 춥게 느껴졌다. 전날보다 바람이 덜 불어 걷기에도 수월했다. 걷다 보니 역시 집을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만 있다 보면 주변의 환경 변화에 취약해지기 마련이고 매사 수동적으로 임하는 태도는 나를 더욱 쪼그라들게 한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걷다가 홍제천 부근에서 죽은 쥐를 발견하고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처음엔 스치듯 그것을 봤고 다시 고개를 돌려 모로 누워 죽어 있는 쥐의 형상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듯이. 어째서 쥐는 길 한복판에서 죽어 있던 걸까.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며 옆자리에서 통화하는 사람의 목소리며 유난스럽게 책장을 넘기거나 둔탁한 움직임에서 비롯된 온갖 소리들, 심지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도, 내겐 전부 거대한 소음으로 들렸다. 내 귀는 한층 더 예민해져 있었다. 이어폰으로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와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초가 타들어가는 소리와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지는 ASMR 사운드를 재생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글도 조금 쓴다.


반나절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고 말았는데 아마 계절 장애 증후군 탓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득 예전에 지나쳤던 페터 한트케의 문장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글을 쓸 때는 난 반드시 옛날에 대해, 적어도 쓰고 있는 시간 동안은 지나가버린 일에 대해 쓴다. 늘 그렇듯이 난 문학적으로 대상에 몰두하며 나 자신을 회상하고, 문장을 만드는 기계로 피상화시키고 객관화시킨다.” 일군의 작가들은 일상과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객관화할 줄 안다. 이 순간 나는 변화의 경계점에서 한낱 점처럼 느껴지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어느덧 커피는 차갑게 식었고 본연의 맛을 잃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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