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기
정말 잘 살아줬다. 장하다. 대견하다. 기특하다. 나는 그 자체로 나이니까.
오래전부터 나는 나를 싫어했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고, 늘 남과 나를 비교했다. 그 비교는 링크드인과 인스타그램을 볼 수록 더 심해졌었다. 내가 이루거나 가지지 못한 것들을 이미 이룬 남을 보며 질투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 모습이 좋지 않게 비치는 게 싫어서 완벽함을 추구했다. 나만의 강한 틀에 나를 가두고 살았다. 그래서 계획대로 안 되는 상황을 만나면 힘들었다. 잘하지 못하거나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의 나'가 너무 높아서 도달하지 못할 때에는 실패했다는 패배감과 셀프 비난이 뒤따라왔다.
한 예로 이직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내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비관적인 말로 나를 덮고 바닥 끝까지 보내버렸다.
2022년, 그랬던 내가 나를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면 나의 성격과 기질을 알게 되었다.
작년 7월 남편은 퇴사를 했다. 다니던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어서 개인적인 사업을 해보겠다고 용기 있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1년의 플랜을 짜고 나왔는데, 코로나가 점점 심해질수록 계획은 뒤틀렸고 수입은 좋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결국 그 일을 그만두었다.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꼬박꼬박 들어왔던 수입을 책임져야 했다. 통장잔고는 순식간에 콱콱 줄어들었다.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불안감이 나날이 커져갔다. 남편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푸시를 했다. 동시에 계속해서 최악을 생각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어떡해? 3년의 경력단절이 있는데 이 경력으로 다시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가슴이 너무너무 답답했다. 부부싸움도 잦았다.
싸울 때마다 남편은 왜 계속 최악을 생각하느냐고 말했다.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는데 추측하고 가정만 하냐고.
'그러게, 왜 이렇게 나는 최악의 수를 항상 생각할까?'
남편에게 모든 짐을 지우기 싫었다. 직장에 속하지 않고 나만의 일을 하며 살고 싶었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런데 고민할수록 이상하게 내가 하고 싶은 관심사는 찾아지지 않았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 기웃거리고 저기 기웃거리다가 손을 놓는 건은 다반사였다.
문뜩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나만의 일(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들여다보는 게 필요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방법을 찾다가 MBTI보다 더 심도 있는 'TCI 기질 및 성격 검사'를 신청했다. 심리검사를 하면 전문가가 해석해주기 때문에 깊이 있게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검사를 통해 나의 사고방식, 감정 양식, 행동 패턴, 대인관계 양상, 선호 경향을 폭넓고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1 전문가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면서 결과지 항목을 하나씩 해석해주었다. 이 세상에 있는 용한 점집보다 더 용했던 기질 검사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위험회피 기질: 걱정 근심이 많고 위험한 요소들을 맞닥뜨리기 싫어서 부정적인 경우의 수를 두며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음.
성취에 대한 야망이 높다: 내가 하는 일이 상위권 갔으면 좋겠고, 내가 원하는 결과만큼 만들어내고 싶다. 이 일이 결과물이 났을 때 나 스스로 인정해야 만족함.
완벽주의: 가능한 모든 걸 잘하고 싶어 한다. 이루고자 하는 퀄리티가 높아서 나를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음.
자극 추구: 변화가 있을 때 흥미로워하며, 반복적인 일상을 지루해할 수 있음.
그 외에도 정서적 개방성, 감수성, 독립 의존, 인내력 등을 살펴보며 깨달았다.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한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게 나였다(This is me).
더불어 내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도 찾게 되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잘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근거들을 생각하기로 했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않고,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결과 보다 노력했던 과정들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나를 다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위험회피 기질과 불안함을 내제하고 있지만 늘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지만 선택을 해나갔다.
모든 과정에서 애쓰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갔음을 알았다. 나의 기질을 마주하며 일어서려고 했고 일어섰던 나의 선택과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자신을 좀 믿어, 네가 지금 상황이 안 좋다면 네 탓이 얼마나 있겠니. 인생을 잘 살고 싶어서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 너인데 그런 네게 탓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니.
<고민의 답, 33페이지>
하루, 일 년, 10년, 34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나라는 사람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당신이 존재하기에 기대할 수 있는 내일이 존재한다.
당신이 존재하기에 행복할 수 있는 나들이 존재한다.
당신은 지금은 괜찮지 않더라도
앞으로 삶의 모든 좋은 순간은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
<고민의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