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Arif Ibrahim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많은 친구들이 죽었는데
나만 살아남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인 것을.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를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어둠 속에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내 뒤를 따라온다.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먼발치에서 그림자도 멈춰 선다. 발끝부터 어둠이 걷히며 그림자의 형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전 죽은 나의 친구 상겸이다.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린다.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사고를 당해서 혼수상태였어.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고.”
“살아있어서 고마워...”
함께 카페에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친구가 앉았던 자리에 바짝 마른 강아지 한 마리만 웅크린 채 앉아 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강아지를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자니 자꾸만 눈물이 난다.
다시 만나지 말자며 묵은 사람이 떠나고 나면
자기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체험을
등에 지고 새 사람이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의 친구들이 죽어서, 나는 다른 친구를
사귀었노라. 용서를 바란다.
모블랑의 시는 차라리 질긴 슬픔입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깨어보니 꿈이다. 꿈속의 강아지는 여전히 내 품에서 슬픔에 잠긴 나를 위로한다.
“살아있어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