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의 얘기가 듣고 싶지 않아요

네 가지가 없는 삶을 꿈꾸며

by 에킨

나는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기억력이 꽤 좋은 편임에도 누군가 나에게 지나가듯 한 사소한 얘기들은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때때로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 아니었다. 원래 나는 어릴 적부터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타고난 아이였다. 그래서 예술을 전공하게 된 걸 지도 모르겠지만(+공부를 못해서) 남자치고 그런 면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들이 내게 보이는 관심이 그냥 인사치레가 대부분인걸 알아 갔고, 한번 한 이야기를 재차, 삼차 하게 되면서 지쳐갔다. 사실 그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는 그들의 허례허식에 과한 반응을 해왔던 것일 뿐.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더 무뎌지게 됐고, 점차 사람들의 말 한마디, 반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줄어갔다. 사실 일희일비는커녕 흘려듣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면대면으로 대화를 요청한다거나, 단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감정을 이해하려 하고, 답을 주기보다 헤아리려 노력한다. 그게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 바이고,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나도 때때로 힘들 때가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단 둘이 있고, 그는 나보다 연배가 높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얘기를 풀어놓고, 동시에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늘어놓게 된다. 난 사회에서 보는 일반적인 청년이다. 당연히 삶에서 모든 게 어렵고, 사회에 던져진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겪는 일들이 대부분인 데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회 초년생이다. 어쨌든 그런 나보다 사회경험이 많은 상대방은 얘기를 시작한다.


나에겐 귀를 막을 자유조차 없다

“네가 그 일을 하려면 말야…”


“인맥을 많이 쌓은 다음에...”


“다 그런 때가 있는 거야”


“야, 네가 고생을 덜 해서 그래”


-


본인의 피와 살을 떼어내서 해주는 이야기 같지만 난 달라고 한 적이 없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내가 삶에서 겪은 문제들에 대한 대부분의 답은 내 안에서 나왔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형들이 여자 꼬시는 비법을 전수해준다며 헛소리를 늘어놓을 때부터 선배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이 내게 답이라고 준 것들은 주관식 답이었다. 나의 문제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답안지’보단 ‘해설집’을 선호한다. 적어도 활용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선배들은 언제나 자신의 답변을 주곤 한다. 물론 그중에서 쓸만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쓰레기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그 이후 레퍼토리로는 항상 자신의 서사를 풀어내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다. 궁금하지도 않다. 워렌 버핏과의 식사는 돈 주고도 산다지만, 이들은 밥 사주면서 얘기 들어달래도 듣고 싶지 않다.


물론 나에게도 멘토가 있다. 내 속 얘기를 털어놓고, 고민을 풀어내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존재가 있다. 정작 그런 분들은 답을 주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내 삶에 적용이 된다. 그냥 그 존재로써 함께 자리하고,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만으로 그칠 수 없는 걸까? 왜 그들은 항상 내 인생에 훈수 두고 싶어 안달일까. 꼭 한번 면전에 말해주고 싶다.


죄송한데, 형(선배, 누나, 기타 등등) 얘기 듣고 싶지 않아요.


좀 더 싸가지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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