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21개월가량 된 조카가 있다. 엄마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눈을 못 떼며 이런 말들을 한다.
"아유 예쁘다~"
"아이구 잘하네~"
"너무 착하네"
예쁘다는 말은 남자로서 그다지 듣기 쉬운 말은 아니다. 물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라면 들을 법하겠지만 난 해당사항이 없다. 잘한다는 말도 듣기 쉽지 않았다. 뭔가 잘하는 게 많지 않았고, 예체능 쪽에 조금의 재능은 있는 듯했지만 제도권 교육하에 이뤄지는 예술을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테크닉으로써의 접근 같다고만 할까? 배우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모두 힘들었다.
착하다는 말은 위의 것들과 다르게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설거지를 하고도 들을 수 있었고, 학교에서 청소를 열심히 하고도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심지어 한 번은 꼬박꼬박 모은 용돈을 들고 비 오는 날 <비스트 워> 장난감을 사 오는 길에 모르는 아주머니로부터 비 오는 날 심부름한다고 착하다는 말도 들어봤다.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임에 분명했다.
길들여지는 걸까. 착하다는 말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착하다는 인정을 받아도 또 자꾸자꾸 자꾸만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착한 아이여야만 할 것 같았다. 문제는 착한 아이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험난 하단 것이었다. 인생은 실전이니까.
초면에 반말로 말을 걸어온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다짜고짜 몸을 툭툭 치는가 하면, 주어를 밝히지 않고 대뜸 목적만 던진다. 이 길이 맞냐는 둥. NPC가 된 기분이랄까.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나를 유쾌하지 않게 만드는 일은 많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왠지 착한 아이는 안 그럴 것만 같다랄까.
하지만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 색다르게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성을 떼고 나를 '~씨'로 부르는 사람. 프로젝트 기획안 이틀 전까지 자신의 파트를 해오지 않는 사람. 그리고 TOSS로 돈을 보내지 못할지언정 자연스럽게 밥값을 나에게 토스하는 직장 동료까지. 이런 사소하지만 참신한 '불쾌 유발자'들에게까지 착한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물론 나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를 싸가지로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해야만 했다. 나를 '~씨'로 부르는 사람에겐 똑같이 대했고, 기획안을 준비해오지 않는 사람은 다음 프로젝트에서 롤을 없애버렸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밥값은 당연히 더치페이란 걸 주지 시켰다. 나는 그렇게 조금은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돼갔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는 이전보다 예의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Everybody loves~'보단 'Everybody hates~'에 가까워져 갔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더 좋다. 나도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게 나였다. 딱히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사람에 대한 구분도 생겨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어쩌면 다소 예민하다고 할 수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다. 나의 다름을 인정해 준 것이다. 그렇게 그들도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솔직할 필요가 있다. 나도 내게 솔직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의 민낯을 드러냈고, 선택권은 내 손을 떠났다. 나를 받아줄지 말지에 대한 판단은 그들의 몫이다. 나를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생각 따윈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