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줍잖은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

낄끼빠빠 각 잡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by 에킨

어려서부터 주위가 산만하며,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였던 나는 진득하게 뭔가를 해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뭔가를 해도 금세 흥미를 잃는 경우가 잦았고, 남들과 공유할 수 없더라도 내가 흥미가 있으면 어느 정도 만지작거렸다. 무언가 집중하는걸 잘 하지 못했던 나는 책을 별로 안 좋아했다. 책을 피는 순간부터 첫 문장을 읽는 순간까지도 나에게 어떠한 흥미 유발조차 되지 못했다. 가뜩이나 집중력이 약한 나는 흥미 없는 책을 붙들고 있을만한 능력이 안됐다.


그나마 책을 보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신문과 사설을 읽기 시작했고, 내가 써 버릇하니 남들은 대체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겼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 나는 내 의사표현을 말로도 전달하는 게 쉽지 않은데 반해, 작가들은 그걸 유려하게 써 내려갔다. 배울 점이 많았다.


책을 읽다 보니 서점을 가는 일이 잦아졌고,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서점에 가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서점이 어느순간부터 나에게 편안한 장소가 됐다.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베스트셀러들을 보게 됐는데, 그 당시 가장 유행했던 책이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서점에서 그 책을 처음 보고 이런 책도 있구나 하고 넘어간 뒤 어딜 가나 그 책이 보였다. 교회에서도 보였고, 카페에서도, 심지어 그 책을 패션 아이템처럼 들고 다니는 학생들도 종종 보였다. 신기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 이길래. 교회갈때 성경책을 들고 가듯, 그 책을 들고 저자라도 만나러 가나 싶었다.


우리 엄마도 아픈데 청춘인가


시간이 흘러 군대도 전역하고, 대학도 졸업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그 무렵부턴 일반 서점보단 알라딘 같은 중고책 서점을 더 선호하게 됐다.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나로선 대여할 자신은 없었고, 굳이 새 책일 필요도 없었기에 알라딘을 자주 찾았는데, 신기한 건 여기서도 그 책이 많이 보였다는 거다. 각기 다른 알라딘 지점을 방문해도 그 책이 몇 권씩 꽂혀 있었다. 항상 찾는 책이 없어 이 지점, 저 지점을 오갔던 나로선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무 데나 가도 살 수 있었을 테니.


그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온갖 청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들을 접하게 됐다. 다들 비슷한 말을 해댔다. 취업이 안돼서, 자존감이 낮아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등 온갖 문제들을 갖고있는 청춘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청년들이 고민을 토로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솔루션을 제공했다. 솔루션 자판기였다. 취업이 안 되는 건 그들 탓이 아니라 사회의 탓이었다. 자존감이 낮은 건 생각만 전환하면 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면 일단 몸부터 움직이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었다.


당기면... 나온다


방송 매체와 각종 토크콘서트에서 청춘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담론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나에게도 해당되거나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경험이 있는 문제들 또한 많이 있었다. 청년들이 제기한 문제들은 또래의 친구들이 대체로 공감할만한 내용이었기에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발언자가 그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얘기한다는 것이다.


취업이 안 되는 걸 사회의 탓으로 돌려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자존감이 낮은 게 생각만 전환한다고 될 문제였다면 애초에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가 고민인 사람에게 일단 움직이고, 행동하라고 하는 건 길치에게 지도 하나 덜렁 던져주고 찾아오라는 것 같이 들린다. 내가 쉽게 건넨 위로를 바탕으로 시도를 하고, 또다시 좌절하게 됐을 때 당사자가 느낄 절망감을 우리는 감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남에게 말할 땐 신중해야 한다. 충분히 고민하고,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땐 침묵이 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인생은 매 순간이 실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그게 남의 삶이라면 더더욱. 분명 우리 사회는 이전에 비해, 비단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성장해가고 있다. 하지만 더욱 성장하기 위해선 우리말이 갖고 있는 무게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민하고 내뱉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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