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가 가져다준 자유

by 에킨

지금이야 영화를 그저 픽션으로 치부하고 말지만, 어렸을 땐 정말 인생에서 그런 기상천외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줄로만 알았다. 자고 일어나면 천지가 개벽해있고, 내 인생이 180도 달라져 버리는, 다이나믹하고 버라이어티 한 인생이 펼쳐질 줄만 알았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를 기대감과 설렘이 항상 존재했던 것 같다. '혹시 나에게도?'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왜 내 인생엔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 거지?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영웅이 된다든지, <솔드아웃>에서 아놀드처럼 알고 보니 우리 아빠도 그런 히어로였다든지 하는. 사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다. 현실이었다면 케빈이나 아놀드나 안 죽은 게 다행이니.


arnold-3557975_1280.png 우리 아버지는... 아놀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 사람도 나에게 어느 정도 답례를, 혹은 내가 베푼 호의에 대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내가 그 사람에게 선의로써 한 행동으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그런 기대감을 품게 됐다. 하지만 관계라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Give and Take'는 흔하지 않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나는 항상 실망감도 컸다. 기대감을 갖는 건 좋았으나 실망감이란 후폭풍이 나를 괴롭혔다.

나이가 들며 점차 기대란 것에 무감각해져 갔고, 별것도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살았다. 나도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거였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없었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작은 호의에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실망스러운 일을 겪는다고 낙심하지도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인생이란 원래 고달픈 거니까. 고진감래라 하지 않았나. 물론 낙이 안 와도 된다. 하지만 언젠간 다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없어졌다는 건 쓸데없는 감정 낭비가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감정이란 녀석 때문에 때론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밥도 먹기 싫고, 술은 왜 먹기 싫어지지 않지? 먹고 술배만 나오게. 그것만 아니라면 나는 일도 잘할 수 있고,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먹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나를 시궁창으로 밀어 넣으려 해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내 멘탈은 시궁창 맨 아래층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worm-hole-3055929_1920.jpg 시궁창도 거닐만 하다


아니면 말고


그럴 수도 있지


요즘 가장 많이 되뇌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냥 그러려니 해버린다.


"뭐야, 아니야? 아님 말고."


"뭐? 걔가 그랬다고? 그럴 수도 있지."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런 마음을 품은 나 자신이었다. 사실 그들은 내게 기대를 품으라고 한 적이 없다. 내 멋대로 기대를 품었을 뿐. 그 기대가 실망감으로 변하고, 실망감이 나를 휘감는 순간 괴로움이 됐다.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던 건이었다. 아무도 나를 괴롭힐 생각이 없는데 나만 나를 괴롭히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이랄까. 나만 나를 냅두면 만사형통이었다.


남을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와 그 사람은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오랜 시간 다른 방향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우린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나도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서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인정'할 수 있다면 내 삶에서의 관계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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