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었을 때 단번에 마음에 쏙 들어오는 음악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남들이 다 좋다고 칭찬을 내둘러서 '그래, 나도 한 번 들어나보자'하는 심상이라든지 혹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마지 않았던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신곡이라 하더라도 노래의 첫음절부터 번개를 맞은 것처럼 두 귀가 번쩍,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경우는 드물다.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을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선별해 넣는 작업도 꽤나 공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그 리스트 안에 쌓인 각개의 음악들을 좋아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도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듣고 싶은 앨범이 있어 그 앨범을 통째로 구매하거나, 오며 가며 들었던 한 노래에 너무 끌려 그 음원이 있는 앨범 전체를 다운로드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신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선택해서 결제부터 하고 본다. 나 같은 경우는 음반을 다량 구매하게 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그건 대체로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N모사에서 정기결제 문자가 날아오는 월말 즈음이다. 한 달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한 가지 노래만 듣다가 돌연 그간 편협한 나의 음악세계를 비판하며 'MP3 100곡 다운로드 쿠폰'의 갱신기간 직전에 랜덤의 음악들을 마구잡이로 장바구니에 쑤셔 넣는 매 월의 마지막을 보낸 건 벌써 5년 째다. 아무리 생각하고 되짚어봐도 듣고 싶은 음악이 없을 때는 이전에 빠져 있었지만 지금은 좀 아리송한 지난 구매내역을 되짚어보며 재다운로드 기간이 초과된 음원들을 다시 구매하곤 한다.
월말의 폭식이 지나면 그 사이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다운로드 목록에 'New' 딱지를 빛내며 반짝이는 신입들의 목록을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재생한다. 출, 퇴근 시간엔 좋아하는 음악만 듣고 싶으므로 이 시간을 피해서 청소를 하거나 손빨래를 하는, 혹은 대충 써도 코너킥 까지는 갈 수 있는 가벼운 글 작업을 할 때 듣는다. 그러다 보면 '오, 좋은데?' 하는 내 취향에 쏙 들어맞는 곡들이 귀에 들어오고, 그럴 때마다 재생되고 있는 노래의 제목을 확인하여 기억하고 기록해둔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 순서로 지워나간다.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스킵된 다양한 곡들이 재생목록에서 사라지고, 남은 노래들은 아이튠즈 동기화를 거쳐 컴퓨터에서 휴대폰으로 옮겨진다.
이제부턴 한 곡 한 곳을 최대한 공들여 듣는다. 듣다가 반복 재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이 노래야말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곡이라는 걸 스스로 기쁘게 인정하며, 몇 번이고 반복하며 곡을 듣고 그 곡의 전부를 뜯어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도 단계가 있다. 맨 처음은 보컬. 보컬의 음색은 내게 그 곡을 사랑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하기 위한 가장 처음의 단계이므로, 나의 취향에 가장 가까운 목소리를 만나면 그 목소리에만 집중해 가사와 주요한 리듬을 외운다. 그다음은 기타. 기타가 충분히 보컬의 음색을 뒷받침해주는지, 혹은 멋들어진 기타 솔로로 마음을 홀딱 빼앗아 버릴 수 있는지, 그도 아니라면 기타가 연주하는 음들이 너무 좋아 밤새고 들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 가늠한다. 그 이후는 곡 전체의 분위기를 잘 받쳐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베이스, 드럼 정도의 순서를 거친다. 때로는 하프나 비올라, 첼로와 같은 클래식한 악기들의 음색에 홀리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어진 4인과 키보드가 가미된 밴드의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마음속에 콕 들어앉아 자리 잡았다면 그 곡을 구성하는 모든 리듬과 연주가 곡의 도입부 한 소절만 들어도 금세 처음부터 끝까지 떠오를 정도로 익숙해질 때까지 듣고 또 듣는다. 책으로 따지면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비디오테이프로 따지면 필름이 늘어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그렇게 '좋아요'를 마구마구 찍어 더 이상 손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애정 하게 된 곡들 사이에서 '연주음악(inst)'을 영원히 안착시킬지 말지를 고민한다. 보컬이 있어야 완성되는 음악을 선호하는 나는 정말 좋아하는 곡이 생겨도 그 곡과 함께 발매된 연주음악은 대체로 스킵해버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주음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하나의 곡 안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보컬이기 때문이기에 굳게 된 습관이다. 4인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곡조를 넘어 해당 곡의 연주음악까지 좋아하게 되어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영원히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제 그 노래를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표출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단계에서 가장 최종이자 최후의 수순, 수많은 플레이리스트들 중에서 이 과정을 거쳐 걸러진 최정예들은 '즐겨 듣는 음악(Favorite)'섹션으로 이동된다.
100에서 50, 50에서 10을 솎아내는 의미 없는 수순을 너무 장황하게 밟고 있다는 생각은 가끔씩 들지만, 이러한 단계와 과정을 거치며 생존해 '나'라는 인간의 건물에 입주한 음악들에겐 그에 합당하는 평생의 권리가 주어지니 이만하면 당연한 절차가 아닌가 하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물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입주자들을 선별하며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건물주 자신이라는 아이러니함은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불볕더위에는 미리 에어컨을 가동하고,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면 동파 상태가 오지 않도록 수도관을 유의하는 그런 수고쯤은 사랑해 마지않아 꿈에서까지 나올 지경으로 애정 하는 그들을 위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임을.
이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무사히 '즐겨 듣는 음악'의 구성원들에 대한 철통방어를 마친다. 이 누추한 건물에 기꺼이 입주해줄 다음 달의 뉴페이스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