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물이 갑자기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생긴다면 그 건물을 자주 바라보던 사람들은 수많은 추측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앙상한 건물의 잔재를 바라보며 저렇게 시멘트를 한가득 발랐는데 어떻게 무너질 수가 있지, 튼튼하게 공사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하지 않았나, 그 길었던 공사기간은 전부 날림이었나, 어떤 부분의 자재를 모자라게 사용했기에 무너진 걸까, 애초에 저 건물을 튼튼하게 지을 생각이 없었는지 몰라, 그쪽 지반이 원래 약했대 라는 등의 무수한 이야기를 쏟아낼 것이다. 각자의 견해를 나누고 나면 그 건물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건물의 무너짐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무너져 내린 건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가 생겼는지, 그리고 그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밤샘 회의가 열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상처만 입는 수준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전재산을 잃어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건물이 무너져 버렸다'는 문장을 가지고 비난과 조소를 건물주에게 퍼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건물주와 건물을 설계한 시공사의 소송과 손해 분배가 일어날 수도, 혹은 이 사건으로 점화되어 모 기업과 모 공장의 비리가 마침내 드러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이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쉽게 지워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건 역시 그 건물 안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무너져 내린 믿음의 조각을 주워 담아 분리수거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 것일지 맹목적으로 가늠만 하고 있었을 뿐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을 직접 겪고 나니, 그런 일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보게 된다. 삶은 생각과 다짐대로 흘러가진 않겠지만 무너져 버린 건물을 또 만났을 때 적어도 직전의 경험을 토대로 유연하게 대책을 세울 수는 있지 않을까. 운동화 끈은 언제고 다시 풀릴 수 있겠지만 풀어진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 방법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다음번에는 그 끈을 밟고 엎어져 몸을 크게 다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