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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Mar 21. 2019

갈 길을 잃은 영화, <우상>

*스포일러와 결말에 대한 해석이 있습니다.



<우상>은 각자의 욕망을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리는 영화다. 도의원 구명회(한석규)는 도지사가 되어 본격적인 정치인 2막 인생을 이어 나가기 위해 질주하고 유중식(설경구)은 아들을 좇아 질주하며 최련화(천우희)는 어떻게든 한국에서 추방되지 않기 위해 질주한다. 결코 섞일 수 없었던 세 사람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에 휘말리며 일순 겹쳐지게 되는데, 그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과 사건 이후 생존을 이어가는 방식 또한 각자의 성향대로 물불 가리지 않고 내달리는 도주 혹은 질주에 가깝다. 세 사람의 계급 차이로 인해 각각의 출발지점은 다르지만 다시 합류하게 되는 지점도 비슷하며, 이들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우상'을 향해 걸림돌을 부숴가며 돌진하는 감정 또한 전부 동일하다. 이 모든 상황에서 회생하여 대중이 원하는 드라마에 몰입하는 구명회가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결말로 갈음하게 되지만 말이다.  


영화 속에서 '우상'에 대해 가장 맹목적이고 일차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유중식이다. 아들을 사고로 잃고 무당을 찾아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의 목을 따라'는 이야기만 믿고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머리를 폭파한다. 중식의 행동엔 이유도 목적도 없다. 구명회와 최련화를 위한 분노에서 기인된 행동도 아니고 매스컴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중식은 어렸을 때부터 자위를 대신해주었던 발달장애 아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정관수술 혹은 거세를 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최련화가 아들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며 최련화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기뻐한다. 유중식의 우상은 '손자'라고 믿고 싶은 그 무언가의 이미지다. 최련화와 유중식이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대면하게 되며 유중식이 내뱉는 "내가 직접 가서 잘랐는데"라는 대사는, 영화에서 가장 원초적이었던 유중식의 '우상'이라는 대상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며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눈을 가린 채 각자의 허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말미, 유중식이 이순신 동상의 머리부분을 폭파하기 전 아주 길게 흐느껴 우는 장면은 <우상>의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상>에서 취한 세 사람 각자의 '우상'에 대해 너무 많은 에피소드와 서사가 얽혀있다 보니, 영화 자체는 방향성을 잃고 흔들거리다가 결국 유중식의 돌발 행동과 구명회의 알 수 없는 언어를 뱉으며 대중을 여전히 선동하는 결말로 흘러가며 무너진다. <우상>에 장치된 수많은 비유와 반전들은 초반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진행되지 못한 채 흐트러져 버린다. 결국 구명회가 승리하여 그토록 강조하던 자신의 드라마를 다시 편성하는 장면도, 무엇을 비유하는지 무엇을 대변하고 싶은 것인지 심증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에 다다르는 디테일들이 너무 부족하다. 비유와 감독의 자의식, 그리고 그로 인한 미장센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스토리 전체를 갉아먹어버린 역행의 영화라고 해야 할까. 듣기 평가를 하는 수준으로 집중해야 하는 연변 사투리의 대사도 영화 자체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설정이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한다고 한들 대사가 영화의 성향에 먹혀 씹혀버리는 순간부터는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모든 부분을 손보며 되짚어가야 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친절한 태도가 흥행의 척도가 된다는 공식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상>은 너무 멀리, 옳지 않은 방향으로 마무리된 영화라 생각된다.  


<우상>을 가장 빛내는 것은 아무래도 위에 첨부해둔 포스터 세 장이 아닐까. 144분짜리 영화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저 포스터 세 장이야말로 제 갈 길과 놓일 곳을 알아서 찾아간, 말하자면 <우상>의 해답과 해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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