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대하여
밴드 '9와 숫자들'의 리더 9(송재경)의 솔로곡 '문학소년'은 이렇게 시작한다.
체육시간 다가올 때마다
이상하게도 난 머리가 아파서
운동장 한구석 모래 구름 속
올 것 같지 않던 미래를 바라봤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체육보다는 문학을 수학보다는 국어를 좋아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전개되는 '문학소년'이라는 노래에 푹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도입부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직접 몸을 움직이거나 스포츠에 참가하는 것은 지독히도 싫어했다. 내가 운동을 싫어하고 기피하게 된 이유는 초, 중, 고등학교 기본과목 중 하나였던 체육시간 때문이었다. 필수과목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있어야 했던 이상한 교과과정. 유일하게 책상과 교실로부터 벗어나 흙먼지와 흙바람을 뒤집어써도 누가 뭐랄 것 없던 그 시간을 대부분 좋아했지만, 나는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성씨가 강 씨인 탓에 새 학기 새 반이 편성될 때마다 높은 확률로 임시 반장을 맡았고 체육시간에도 예외 없이 시범대상이 되어야 했다. 간 씨나 감씨를 만나지 않는 이상 대체로 내가 1번으로 나서서 앞구르기, 뜀틀, 체력장 등을 가장 먼저 버텨내야 했고, 학급 전원이 참여해야 하는 계주 같은 경우에는 '1번 때문에 초반에 거리 벌리기는 힘들겠네'라는 원성을 견뎌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달려야 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육시간이 싫어졌고 체육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이 영겁 같은 50분을 무슨 수로 버틸지를 고민하며 온갖 꾀를 내기 시작했다. 특수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체육시간의 비중이 줄어드니 그 압박은 점차적으로 옅어지기 시작했지만, 가장 먼저 시작하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목을 받아야 했던 성씨 가나다순 1번의 트라우마를 쉽게 벗어던질 수는 없었다.
이후 운동과는 완전히 담판을 쌓은 채 지낼 수밖에 없던, 그러니까 나로서는 그게 너무도 편했던 고등학교 3학년 대입 준비기간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살이 붙고 생애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게 되었다. 입시 기간 중에 세 배로 먹던 것을 입시가 끝나자마자 원래대로 돌려놓으니 체중이 급격하게 줄고 있긴 했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에 젖어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렇게 잘 진행되던 다이어트가 음주가 시작되며 정체기를 겪자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막상 운동을 시작하려 하니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던 터라 일단 달리기는 싫었고 헬스나 러닝머신 등 실내에서 오래 있어야 하는 재미없고 반복적인 운동은 싫었다. 미술을 전공하기 전에 무용을 전공하리라 마음먹고 열심히 했던 발레를 다시 해볼까 했지만, 발레는 지금 다이어트가 좀 필요한 내 몸에 맞지 않는 듯해 보였고 수영도 내킬 때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달리기만은 피해보자고 생각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자전거로 눈을 돌렸다.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운동으로서' 자전거를 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지하철 첫 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과 막차가 끊긴 시간에도 기본적인 장비만 있다면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장점, 그날그날 자전거에 오를 때마다 때로는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자유자재의 상황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 차보다는 느리지만 걷는 것보다는 빠르니 몇 시간이 걸려도 결국 가고 싶은 장소에 다다를 수 있게 만드는 매력. 자전거를 조금 더 건강하고 힘들게 타는 방법은 지금 타고 있는 로드싸이클을 사기 전에는 몰랐지만, 어쨌든 스스로 속도를 조율해가며 바깥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몰랐다면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겠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주행방법을 어린 시절에 친구들을 통해 습득했고 자전거도 수영 등과 비슷하게 한번 배워두면 잘 잊히지 않는 운동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자전거를 산 후 운동으로서의 첫 페달을 밟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봄이 오면 한강에 꽃놀이 갈 때 타곤 했던 대여용 자전거의 페달, 딱 그 정도의 경쾌함과 가벼움을 가지고 나는 자전거를 '새롭게' 다시 타기 시작했다. 어릴 때 타던 관성적인 움직임과는 다르게, 이번에야말로 내 자전거 내 것이라는 묘한 사명감을 가지고 페달링을 했다. 마음과 높이를 다르게 가지니 자전거라는 사물 자체가 이전에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자전거에 대한 예찬이 아름답게 담겨 있는 권나무의 노래 '자전거를 타면 너무 좋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붙여본다. 제목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그런 사랑스러운 노래다.
발을 구르면 별들이 가까이
정직하게 어두운 밤
달리는 바람 그 소리를 들어보네
손끝 스치는 그날의 불운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달리는 바람 그 소리를 들어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