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부상을 겪어야 했던 첫 러닝의 기록
얼마 전부터 달리기, 그러니까 '러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달리기에 상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로서는 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마음먹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트라우마로 말할 것 같으면 20년도 더 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오지 않고 요 앞의 가까운 이야기를 먼저 붙이고 싶다. 어쨌든 그렇게 관심을 가지다 보니 난생처음으로 그냥 일상 운동화가 아닌 러닝화라는 것을 사게 되었고 일주일 전부터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작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뛰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그 날 나는 무릎을 다쳤기 때문이다.
무릎을 다치게 된 건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퇴근할 때 반은 러닝으로 반은 자전거(따릉이)로 와보자고 마음을 가진 날, 부리나케 퇴근하고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흑석 나들목 앞에 서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뛰는데 방도는 없다지만 주변의 고수들에게 몇 분에 몇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익힌 후, 몸도 가볍게 하기 위해 나머지 짐을 전부 사무실에 두고 나와 몹시 홀가분한 상태였다. 내 계획은 흑석 나들목(동작)에서 출발해 반포나들목(고속버스터미널)까지 뛰어가고, 거기서부터 청담나들목(삼성)까지 돌아오는 길은 역 근처에 있는 따릉이를 대여해 설렁설렁 돌아오는 것이었다. 흑석 나들목에서 러닝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속터미널까지 어떻게 가나, 반포대교는 언제 나오나 온통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뛰어보니 뛰기 전 무척 걱정했던 오른 다리도 멀쩡했고 발바닥도 아프지 않아 일부분은 걷고 나머지 구간은 대체로 쉬지 않고 뛰었다. 그날따라 날씨도 좋았고 공기도 깨끗해 한강에 사람들도 참 많았고, 한강 둔치에서 라일락 내음도 솔솔 불어와 기분이 참 좋았다. 딱, '컨디션이 참 좋다'는 표현이 어울리던 날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쉬지 않는 구간에서 조금 무리하게 속도를 냈고 그러다 보니 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반포대교에 도착했다. 흑석에서 반포까지는 약 5km 정도의 거리로 나에게는 난생처음 달려보는 장거리였다. 이 정도야 가뿐하다는 생각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나서 호기롭게 따릉이를 대여해 집까지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처음 러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내 온몸에 흠뻑 묻히고 돌아온 바깥 냄새가 좋아 집에 오자마자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흡족한 마음으로 대충 널브러져 휴식을 취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양쪽 무릎이 누가 뾰족한 도구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쑤시더니 급기야 점심때가 되니 걷는데 문제가 생길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물리치료를 받는 당시에는 통증이 덜했으나 퇴근이 다가오니 또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그렇게 많이 타면서도 단 한 번도 아프거나 다친 적이 없던 무릎 부근이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파오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이 정도는 으레 겪는 근육통이니 싶어 며칠을 가슴 졸이며 있었다. 이후로 다시 러닝을 하지는 못하고 그나마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자전거를 몇 번 타려 했지만, 통증이 여전히 남아있고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파스와 소염제에 의존한 채 지난주를 아주 울적하게 보냈다. 이대로 있기엔 뭔가 너무 억울해서 정형외과와 한의원, 약국의 문을 차례로 두들겨봤지만 염증이나 인대 파열 등의 소견은 없었으며 나는 매일 밤 집으로 돌아와 도대체 내 종아리의 어느 근육에 문제가 생겼나 점검하고자 고등학생 때 보던 인체해부학책과 온갖 유튜브를 눈에 불을 켜고 헤짚기 시작했다.
아픈 두 다리를 부여잡고 엉엉 울며 마지막으로 찾아간, 벌써 2년째 내 몸을 봐주고 계시는 마사지사분께서 내 다리를 지그시 누르시더니 한 마디를 던지셨다. "이 정도면 확실히 무리하긴 하셨는데요, 이건 뭐 혼나셔야 할 수준이네요." 마사지 침대에 누워 무릎쪽의 뭉친 근육을 풀며 몸을 맡기고 있으려니 설움이 밀려왔다. "그 날은 컨디션도 다 좋고 이 정도면 나도 잘 뛸 수 있겠다 싶었단 말이죠." 그렇게 볼멘소리를 하다 문득 몇 년 전 자전거에서 낙차해 골절상을 입고 말았던 아득한 대형사고의 순간이 떠올랐다. 새벽 4시 30분부터 차가운 공기를 마셔가며 300km를 독주로 달려가던 그 시간들. 도로 위에서 간간히 마주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서울에서 경기, 경기에서 강원을 찍고 다시 경기도로 막 진입하던 순간에 났던 그 사고의 기억이 떠올랐다. 운동을 할 때 몸에서 나오는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팔이 부러진 지도 얼굴이 피범벅이 된지도 몰랐던 순간, 그 와중에도 페달을 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와 지금이 꼭 같은 모양이라 놀랐다. 너무 무리해서 한 번에 5km를 넘게 뛰지 말 걸, 페이스를 좀 더 천천히 조절할걸, 스트레칭을 그렇게 빨리 끝내는 게 아닌데, 자세를 좀 더 바르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달릴 때는 고작 5km라고 생각했던 거리가 다치고 아프고 나니 내겐 너무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일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수 번은 비슷한 방식으로 퇴근하려고 했건만 그건 고사하고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있으려니 운동에서, 인생에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다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말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항상 반복되는 나의 문제라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건만 어찌도 이렇게 쉽게 까먹고 또다시 돌아서면 사고를 내곤 하는 걸까. 늘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렇게 한 번 다치고 나면 더 세심한 주의와 자각을 하게 되어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일까.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흘러가진 않겠지만 이번에도 결국 같은 다짐을 좀 더 굳건하게 세우고 있다. 다치고 난 후 좀이 쑤시고 불편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절대 무리하지 말 것. 설령 그게 내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이후의 회복에 신경 쓸 것.
뛸 수 있는 무릎 상태로 돌아온다면 망설이지 않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할 것이다. 아직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과 진단들을 받아 든 채, 내 두 다리에게 필요한 시간만큼의 회복기간을 줄 예정이다. 그때까진 그 긴 한강 둔치의 도로들을 매섭게 노려보며 버틸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첫 러닝을 하던 날 나를 스쳐 지나갔던 도로의 색과 바람의 세기, 그리고 풀숲과 맞은편에서 똑같이 러닝을 하며 나를 지나치던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 순간을 다시 온전히 맞이할 때까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과 작은 다툼을 벌일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5km를 쉼 없이 뛴다는 건 히말라야 K2를 오르던 시절보다 더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그 날은 금방 올 것이고, 그때 그 순간의 희열을 생각하며 버텨낼 생각이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옳은 방향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