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by 강민영

나는 프린트로 내 글을 출력해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는 남이 쓴 글을 읽을 때의 배가 되는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고, 또 그만큼 스스로의 글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해당 글이 출력되었다는 건 결국 내 선택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 된다. 어딘가에 제출해야 하거나 중요한 청탁이거나 지금 당장 가장 마음 쓰고 있는 글들을 주로 그렇게 본다. 출력되어 나온 원고는 그 자체로 어떤 존재감이 생긴다. 컴퓨터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가 한참 지나긴 했어도 나는 여전히 이 올드한 방식의 장점을 믿는다.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순간은 내 글이 프린터기에서 검은 잉크로 찍혀 나와 하얀 A4용지를 가득 채워 내 두 손에 얹어지는 바로 그 때다.

하지만 막 프린터에서 뽑아져 나온 따끈한 출력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글을 출력한 이후에 바로 받아 들어 보지 않고 몇 분 정도, 필요에 의하면 몇 시간 정도 프린터기에서 묻어 나온 열기를 빠지면 본다. 기계의 따듯함이 묻어 있는 출력본은 어쩐지 내가 그 원고의 초고를 만들었을 때의 달뜬 엉성함을 닮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건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초고에서 (내가 느끼기에) 완전한 글이 되기까지의 순서를 따져보면 초고는 거의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의 나를 길거리에 전시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옷으로 특정 부위를 가리고 배와 엉덩이에 힘을 주고 필요한 옷가지를 더 찾아 입는 등의 단계를 거치기 전까지 그건 나와 내 컴퓨터의 텍스트 창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프린터기에서 막 뽑아져 나온 따듯한 종이는 그래서 싫다. 한 김을 빼고 그 특유의 미지근함이 사라져 온전히 ‘종이’로 존재하게 될 때, 갓 나온 종이가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종이’가 되었을 때에만 그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야 조금 더 차갑고 이성적으로 퇴고를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첫 기고를 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겨본 적 없는 규칙이다.

오늘 어느 책을 읽다가 ‘원고가 식고 나면’이라는 구절을 스치면서 읽었다. 책 내용과 관계없이 너무 마음에 들어 책을 눈대중으로 뒤지며 저 말을 찾았지만 어디서 보았는지 이 책이 맞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원고가 식고 나면’이라니, 분명 퇴고에 관한 말일 텐데 어쩜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깊게 저장해두었다. 원고가 식고 나면, 그러니까 글을 쓰던 손이 잠시 쉬며 이성을 되찾고 나면, 몰려오는 수정의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겠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퇴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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