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정말 좋던 장면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그건 스틸컷으로 남아있지 않는 듯하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의 원작 이야기를 하기보단 영화로의 <82년생 김지영> 자체를 더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그렇고 영화를 보면서도 그렇고, 원작과 비교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접점이 많아 그 이야기를 조금 보태야겠다 싶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원작 소설은 영화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는, 그러니까 '영화라는 매체'와는 좀 접점이 맞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에.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먼저 봐야 하는지,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읽어도 좋은지에 대해서는 전자가 훨씬 전체 서사를 이해하는데 좋을 것이란 의견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책 속에서 나열되는 서사와 사건,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입체적으로 움직이고 생동감을 가지는지 금방 와닿을 것이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다면 머릿속에 고정된 인물들의 이미지가 소설과 좀 겹쳐 혼동이 되기 쉬울 것이다. 사실 양쪽 모두 크게 상관이 없을 정도로 <82년생 김지영>은 드라마적으로도 제법 완벽하고 안정적이어서, 보다 깊은 관람을 원한다면 전자를 추천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82년생 김지영>은 원작보다 신파의 역할이 더 강하고 깊다. 그냥 일반적인 드라마, 로맨스 라면 다소 지루할 것 같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분명하고, 그 의미를 따라가다 터져야 할 지점에서 적절하게 그 신파들이 터지기에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꽤 많이 울었다. 내가 울었던 부분들은 대체로 주인공인 '김지영'이 울거나 슬프게 서 있거나,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게 되거나 하는 부분들이 아닌 가볍게 지나가는 에피소드 들이었다. 이를테면 김지영의 어린 시절, 밤늦게 따라오는 남자를 따돌리지 못해 위험에 처했을 때 뒤따라온 아주머니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든가, 김지영의 전 회사 동료들이 화장실 몰카 사건이 터지고 나서 '3층 화장실만 갔었는데'라며 고개를 숙이는 부분 등이 그랬다. 이런 사건들과 이런 위협들, '화장실조차 제대로 못 가는' 불안들이, 대중매체에서 제대로 발화된 적이 없었으며 쓰린 속을 달래며 봐야 했던 그 서사들은, 어떤 때는 시원하기도 어떤 때는 가슴을 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기도 했다. 다만 영화의 흐름이 결국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등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누구가 아닌 김지영 그 자체로 딛게 만드는 지점으로 흘러가는 결말이, 영화를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82년생 김지영>의 장점이자 절대 없어선 안 되었을 것은 역시나 정유미 배우였다. 정유미의 캐스팅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라 생각될 정도로 '김지영'의 역할에 적합했기 때문에. 상대 배우인 남편 역할의 공유 배우에는 의견이 갈릴 것 같지만, 영화적으로 중요하지 원작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거슬리거나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확실히 비중이 좀 있는 편이긴 했다.
가장 좋은 장면은 역시 김지영과 김지영의 어머니인 미숙 씨가 마주하는 장면. 말하자면 거의 이 부분이 거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되는데, 두 배우의 합도 좋고 이 부분의 드라마가 가장 강렬했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박에 떠오를 정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건조하지만, 각각의 서사에서 참을 수 없는 장면들이 종종 있었고, 누군가는 웃지만 영화관 내 대다수에게 쓰린 장면들도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인 동시에 응원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누군가에게는 '카더라'로 남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겨줄 수 있는,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한낱 가십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우울과 절망에 빠져버리게 만드는 일생의 전환이 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피하지 않으며, 완곡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른 것을 차치하고 그것만으로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 여담으로 본업이 출판 편집자이다 보니, 책장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갈 수밖에 없는데 책장에 온통 민음사 세계 전집,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계간 잡지 역시 민음사의 것. 영화에 집중하는 틈틈이 책장에 집중하다가 가끔씩 웃고, 그랬다. 아마 출판노동자들은 다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때가 기회니 풍성하게 마케팅에 활용하는 방법도 좋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