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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Feb 13. 2020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쓴 원작 소설부터 1930년대 캐서린 헵번이 주연을 맡은 첫 영화와, 이후 위노나 라이더와 커스틴 던스트 등이 주연을 맡았던 두 번째 작품까지 워낙 좋아했던 서사였다. 특히 원작 소설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 미취학 시절 어린이에 맞게 각색된 버전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는데, 원작에서 베스가 죽는 장면, 그러니까 베스가 옆집 아기에게 열병이 옮아 죽어가는 그 장면에서 자매들이 결속하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베스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심한 성격과 타고난 체력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데,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그런 베스에 이입을 가장 많이 했는지 후속 작품도 베스가 어떤 방식으로 그려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전작들보다 감동받는 지점이나 인상 깊었던 지점들이 제법 달랐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베스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조망할 수 있었달까. 이건 연출의 능력이라기보다 배우들의 역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얼샤 로넌(조), 엠마 왓슨(메그), 플로렌스 휴(에이미), 엘리자 스캔런(베스)의 배우들 중에 베스 역할의 배우는 좀 생소하고 나머지 배우들을 무척 좋아하는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듣고 엠마 왓슨이 베스 역할을 해서 굉장히 처절하고 구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이를테면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정말 슬픈 베스의 모습을 그려낼 것이라는 생각과는 전혀 달랐고, 그래서 더 좋았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조가 자신의 첫 작품인 '작은 아씨들'을 출판사 대표와 흥정하며 저작권을 오롯이 지켜내고 인세를 높이는 장면. '흥정'이라고 말하기는 사실 적절하지 않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장면이었는데 아무래도 글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쓰기'에서 시작해서 '교정 교열'과 '배치'를 거쳐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어 그것의 가치를 증명하는 이 장면이,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할 수밖에. 이 서사가 이 배우들과 이 감독과 만나면, 여러 가지 악조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여성 창작자들에 대한 존경과 성찰로 흐를 수 있다는 것도 무척 좋았다.


중심 서사는 조에 있고 조의 손을 통해 (루이자 메이 올컷이 그랬던 것처럼) 각색되고 편집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완벽한 가족 서사였고, 최근 본 영화들 중에 완전하게 무결하고 무해한 영화라 더없이 좋았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도, 사랑과 이별 자체도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채 각자의 꿈과 소망을 향해 살아가는, 그것에서 좌절이 느껴지거나 절망이 읽히지 않는 연출가의 시선이 귀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은 로라 던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작년 한 해 정말 말 그대로 '열일'한 로라 던의 갖은 조연들이, 더 의미 깊게 빛나는 로라 던의 역작이었다. <시티즌 루스>를 최근에 봐서 그런지 로라 던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하는 영화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에이미를 맡은 플로렌스 퓨에는 <미드소마> 때문에 약간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른 자매들 역할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고 왜소해 보이는 티모시 살라메에게는 끝까지 별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체구의 차이 때문이랄지 기개의 차이랄지, 에이미가 로리를 휘어잡고 있는 몇 장면은 아직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훗날 로리는 곰 탈을 뒤집어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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