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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May 14. 2020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에 관하여


한국 드라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은 안팎으로 신경 쓰이고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기에, <인간수업>도 <킹덤>처럼 오픈하자마자 챙겨보려고 벼르고 있던 드라마 중 하나였다. 내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기대하는 것들은 대체로 공중파에서 나올 수 없는 소재, 수위, 장면 묘사 정도다. 서사의 전개나 개연성 같은 것들이야 일반 드라마들에서도 충분히 챙겨 볼 수 있으니 1차적으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얼마나 이른바 '기깔나게' 만들어낼 수 있냐는 것, 그게 언제나 최우선이었다. 



그런 면들을 <인간수업>은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드라마였다. 폭력의 수위, 장면 묘사, 전개는 10부작이니 그렇다 쳐도 캐릭터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배우들의 배치, 연기, 무엇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드라마였다. <킹덤>이야 조선 좀비물을 표방하기에 해외에서 여러모로 빛날 수밖에 없는 드라마였지만 <인간수업>은 만듦새 그 자체로 충분히 호평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 드라마의 '소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군가 '요즘 넷플릭스에서 재밌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최근 보았던 드라마/영화들을 생각하며 어김없이 <인간수업>을 떠올리곤 하지만, 또 아주 힘들게 그 이름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에 대한 지적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앞서 말한 소재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만듦새는 차치하고, 불우하게 자란 청소년이 범죄, 그것도 성매매의 포주가 되어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겪는다는 설정. 이 설정은 아마도 N번방 사건이 벌어지기 훨씬 전에 고려되었을 것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겐 N번방이란 아주 끔찍하고 뿌리 뽑아야 할 사건이 드러났고,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N번방 사건의 충격을 중심에 두고, <인간수업>과 같은 이야기를 제대로 볼 용기는 사실 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최종화까지 버티게 한 이유는 그저 드라마의 연출이 몹시 좋았기 때문이다. <인간수업>이 원초적으로 밟고 있는 '소재'에 대한 비판은 그래서 더욱 지워질 수 없다. N번방과 각종 성범죄, 그리고 그것들을 조종하는 남성들(그가 아무리 어리다고 하더라도)의 이야기에 '불우한 가정 출신'이라든지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어 이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가 덧입혀지는 것에 대한 고민은 좀 더 해봤어야 할 것이고, 그 고민이 좀 더 깊었다면 <인간수업>이라는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연출이나 각본 모든 것이 좋았고 오래간만에 만족한 한국 드라마였지만, 시발점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추천하기 꺼려지는, 이런 이상한 딜레마를 겪게 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이다. 



나와 내 주변에서 했던 고민에 대해, 씨네 21의 인터뷰가 일정 부분 해소를 해주고 있긴 했지만 원초적인 질문과 문제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아래 씨네 21의 인터뷰를 붙인다. 어떤 부분을 고민하고 생각했으며 본인들의 창작물이 왜 '논란'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다니는지 명확하게 알고 이해할 것 같지만, 역시 섣불리 <인간수업>을 추천하고 싶진 않아진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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