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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ul 14. 2021

<랑종> 리뷰 - 실패한 공포영화


*스포일러 있습니다.


수많은 유투버들과 영화기자들이 앞다투어 '미쳤다' '놀랍다' '엄청난 공포다'라고 했을 때, <곡성>이 개봉했던 때와 정확히 똑같은 방식이라 좀 흥미로웠다. 그래서 더더욱이 까놓으면 알맹이 하나 없는 <곡성>과 더불어 <랑종>이 기대되지 않았지만, 그나마 약간의 기대치를 품게 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 영화가 나홍진의 연출이 아닌 <셔터>의 반종 피산다나쿤이라는 것. 둘째는 태국에 꽤 깊게 뿌리박혀 있는 샤머니즘 혹은 불교 사상이 '녹아들은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 예고편 역시 별 흥미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코로나가 극성인 이 시국에, 개봉 주에 챙겨보게 되었다. '안 봐도 비디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자세히 단점을 들여다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랑종>은 '무당'이라는 뜻으로, 다큐멘터리 팀이 태국의 전역을 떠돌다 이싼 지역에서 바얀 신을 대대로 모셔온 무당 '님'을 만나 그녀를 인터뷰한다. 신 내림이 대물림되는 일 자체에 흥미가 있었던 다큐멘터리 팀은, 님과 동행하며 뭔가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님의 조카 '밍'과 마주한다. <랑종>은 무당의 신내림 굿, 그리고 신내림 굿이 가문을 타고 내려오는 현상에 관한 의문에서 시작해, 님과 밍을 둘러싼 페이크다큐멘터리(혹은 파운드푸티지)로 시작한다. 



만일 <랑종>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페이크다큐멘터리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형식은 영화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카메라와 피사체 1대 1로 접근하는 방식에서 어긋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카메라 안에 카메라를 삽입하고 카메라 이외의 다른 것이 점차적으로 침범하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이 장면들의 나열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블레어 윗치> <파라노멀 액티비티> <REC>. <랑종>은 앞서 말한 영화들의 장점을 추려 녹여내려다 이도저도 되지 못한 애매한 포지션으로 맺음한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실패한 공포영화'. 페이크다큐멘터리, 슬래셔, 초자연, 액션 그 어느 하나 발 붙이지 못하고 심지어 이를 모조리 분산해서 실제로 해당 장르가 녹여진 장면들은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랑종>을 보고 나면, 위에서 말한 복합적인 짜깁기의 장면 중 어느 하나 머릿속에 걸리는 게 없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엔딩씬에서 엔딩 롤로 넘어가는 영화의 마지막, 다시 페이크다큐의 형식으로 돌아와서 인터뷰되는 '님'의 고백이다. 초반의 차분한 분위기와 대비되게끔 후반의 카니발을 연출했겠지만, 갑작스럽게 출몰하는 좀비떼와 더불어 페이크다큐의 형식으로 들어가려다 또 실패한(몇 번째 실패냐)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조잡스럽기 그지 없다. 이 영화의 점프스케어나 고어는 미미한 수준. 특히 고어의 측면에선 애초에 청불 판정을 예상했다면 더욱 잔혹하게 묘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중요한 건 다 내다 버리고 선정적인 장면이나 아동/동물 대상의 학대적 측면들을 부각시키는 탓에, 영화를 보는 초반부터 불쾌감이 가시지 않아 고생했다. 정체성 없는 영화를 두 시간이나 보고 있자니, 그것도 그 나름대로 힘들었기도 하고.



<랑종>의 가장 큰 단점, 젊고 예쁜 여성을 대상화하며 거기에 온갖 잡스러운 의미를 부여하는 관음적 시선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끝이 없다. 하얀 치마, 생리혈과 하혈, 한국의 남성 감독들이 '여성 희생자'를 다룰 때 "너무나 좋아하는" 소재가 범벅되어 있는 걸 보면서 '아, 이걸 또?'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영화가 내포하고자 하는 의도는 모든 장면에 들어맞지 못하고 다 무너져내렸기에, 영화 밖에서 어떻게든 그 썰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는데, 역시 이것만으로, <랑종>은 완벽하게 실패한 공포영화임이 증명된다. 앞뒤를 따져보면 들어맞지 않는 부분, 심지어 일일이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공포영화의 미덕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되짚어 보았을 때 동일한 간격으로 갈음되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랑종>은 전후의 데칼코마니는 커녕, 바로 앞의 장면과 개연을 끼워 맞추기도 어렵다. 



이 모든 걸 차치하고서도 화가 나는 건 역시 '안 무섭다' 정도일까. 중반부 이후에 다다르면서 갑자기 개그화되는 분위기는 후반부 카니발에서 더 도드라진다. 무섭다는 감정은 개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이런 영화를 즐기고 좋아하는 분들에겐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간만에 최근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서비스된 모 한국영화와 더불어,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은(진짜 공포영화는 어지간하면 극장 가서 보라고 하지만) 영화였다. 트리거 장면 또한 포진해있으니(심지어 좋은 연출도 아닌) 정 궁금하다면 VOD를 기다려보시는 것도. 



무엇보다, <셔터>와 <피막>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에게 크게 실망했다. 오히려 앞서 연출한 두 영화가, <랑종>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으니, 결국은 '제작'과 '오리지널 스토리'의 문제라 하고 싶다. 공포영화와 함께 한 세월 동안 영화가 최우선으로 표현하는 '주체'에 이렇게까지 심드렁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랑종>을 둘러싼 수많은 호들갑들이 돈 받고 한 바이럴이라면 차라리 납득이 갈 지경이다. 이걸 보고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당신은 그냥 공포영화를 못 보는 것입니다... 인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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