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을 벤치마킹한 듯한 제목의, 언제고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던 드라마. TV조선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로, 막장 드라마계의 대모인 임성한 작가가 은퇴를 선언 후 필명인 '피비'로 복귀하며(...) 각본에 참여한 드라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처럼, 막장 오브 막장드라마의 표본이다. TV조선 자체 시청률 최고를 갱신하며 시즌 1이 끝나기 무섭게 시즌 2가 제작되고 현재 시즌 2가 방영되는 중인데 시즌 3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막장 드라마를 즐겨보진 않지만,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가끔씩 땡길 때가 있다. 자극적인 전개 방법 때문이 아니라, 그냥 긴장의 고삐를 풀어 내리고 생각이 '0'에 수렴하는 드라마를 즐기고 싶을 때 그렇다. <결혼 작사 이혼 작곡>도 딱 그런 류의 드라마로, 킬링 타임 그 이상의 의미를 두기 어렵지만 한 화를 보다 보면 계속 보고 싶어지고, 다음 화가 자동적으로 궁금해지는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되는, 중독이 생긴다. 어쩌다 보니 시즌 1을 금세 완주했고 시즌 2를 열심히 챙겨 보고 있다.
줄거리는 별게 없다. 포스터에 나오는 중년의 세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소위 말하는 '불륜 드라마'이기도 한데, <결혼 작사 이혼 작곡> 내의 불륜은 남성 축을 기준으로 시작되고, 이를 여성들이 대체로 응징한다는 큰 설정을 가지고 있다. 시즌 1에서 먹은 고구마가 시즌 2에서 터지고, 또 다른 고구마를 흡입하고...의 반복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론 박주미 배우를 너무 좋아해서 드라마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전부 다 챙겨 보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임성한 작가의 독보적 매력은 무시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박주미를 제외하고 성훈, 이태곤, 이가령, 전수경, 전노민 등 굵직한 중견 배우들의 주연과 더 굵직한(!) 조연들이 포진하고 있어 이들이 치고받고 울고 웃는 에피소드 자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오버스럽거나 불편한 부분도 있긴 하다. 노주현이 귀신이 되어 반투명 인간으로 등장해 이승을 활보하는 개연성 물 건너간 설정 같은 걸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오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선 감초 정도로 봐 줄만 하다.
누군가와 함께 보면 이 드라마의 남자들에게 쌍욕을 던지며 스트레스 하기 딱 좋을 드라마. 에피소드 한 화 당 구성이 뚜렷하고, 은근 적재적소에서 에피를 잘 잘라 다음 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면모가 있어 계속 챙겨 보게 된다. 어떻게 끝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아무튼 박주미 캐릭터가 어디서 장총 구해와서 다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즌 2의 12화를 보고 있는 중인데, 대화로 한 장면을 몇 분째 이어나가고 있는지 대단하다. 임성한 작가의 대사 쓰는 재능은 정말 알아줘야 하지 않나 싶어 혀를 내두를 정도. 증말,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