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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Nov 08. 2021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조용한 희망>



지난 10월에 서비스하기 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원제는 'MAID'로, 루어낸 스테파니의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한국에서 번역된 제목이 <조용한 희망>. 배우 마고 로비가 제작에 출연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싱글맘이 된 후로 계속해서 청소부를 전전하고 마땅히 살 곳이 없이 떠돌며 지내는 알렉스의 이야기가 주다. 남편과 함께 살긴 했지만, 알콜중독자에다 알렉스에게 정신적 학대를 일삼았기에 도저히 그를 견딜 수 없어 집을 뛰쳐나오는 알렉스로부터 <조용한 희망>은 시작된다.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배워둔 기술도 없기에 알렉스는 당장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아무 기술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청소부 일을 시작한다. 숨을 돌릴 틈도 잠시, 예기치 않은 다양한 사건들이 알렉스와 알렉스의 두 살배기 딸 메디를 감싼다.


<조용한 희망>은 시리즈가 공개되자마자 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유도 있고, 극중 알렉스가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틈이 날 때마다 글을 써오다 나중에 결국 꿈을 이룬다는 전개로 흘러가며 이것 또한 실제 이야기이기에, 은연중에 지지하게 되는 지점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아주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결코 유쾌한 드라마는 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게 이 모든 사건과 발화들을 담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극중 알렉스의 통장 잔고가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장면, 아무것도 모르는 딸 메디의 농담, 알렉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떨어지는 상상의 순간 등이 재치 있게 표현되어 시종일관 어두운 서사를 조금씩 걷어내어 주기도 한다. 다소 암울한 소재와 대비되는 시퀀스들도 매력적이다. <노매드랜드>가 떠오르는 장면들도 더러 있을 만큼 인물의 초라함과 대비되 엄청난 풍광을 반비례적으로 보여주는 지점들이 있는데, 이런 환기점들이 시리즈 마지막까지 답답함 없이 쭈욱 관객을 이어가고 압도하게 만든다.

<조용한 희망>의 주인공 알렉스는 어릴 때부터 조울증인 엄마와 엄마에게 폭행을 일삼던 아빠 밑에서 자랐기에 제대로 된 교육과 보살핌 없이 성장했다. 알렉스는 절대적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알렉스에게 완전히 '선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 지점이 특이했는데, 남에게 신세 지는 것과 피해를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꺼리면서도, 정작 본인은 출장 청소를 나간 집에서 절도를 하는 등의 행동을 반복한다. 이런 부분들은 연출의 의도라기보다 원작의 솔직함이 8할을 차지하겠으나, 캐릭터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해서 입체적인 서사를 가능케 한다. 극중 인물들도 일관적인 성격이나 태도를 고수하는 듯 보이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움을 주거나 혹은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는 등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극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트리거 포인트가 있다면, 부모의 끝나지 않는 학대. 그리고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주변 물건을 던지거나 말로 정신적 학대를 일삼는 남편/남자친구의 모습. 사실 주인공 알렉스 같이 어린 싱글맘이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정말 다양한 트리거가 존재하지만,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극복해나가는 지점, 그리고 알렉스가 그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에게 학대를 하던 사람에게 찾아가 "이제 다시는 너를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 뒤, 그가 떠나자 숨을 몰아쉬는 장면이 시리즈 후반부에 나오는데, 올해 보았던 모든 컨텐츠물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이 아린 동시에 뿌듯한 장면이었다.


<조용한 희망>의 주인공인 마가렛 퀼리는 안무예술가로 유명한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게임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재밌는 건, 그녀의 어머니가 앤디 맥도웰이며 이 드라마에서 실제로 모녀 관계로 나온다는 점. 그래서 두 모녀의 캐릭터가 더욱 풍성하게 그려진다 생각되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드라마를 보며 앤디 맥도웰 역의 어머니 '폴라'를 보면서 '와, 정말 답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지점이 수두룩하다는 것. 두 모녀가 실제로도 모녀관계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웃프다.


올해 보았던 드라마 Best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작품. 드라마는 진입 장벽이 높아 시리즈물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겐 다소 추천하기 어려운데, 이건 사실 누구라도 한번쯤은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추천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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