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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25. 2018

<너의 이름은>(2016)


*스포일러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에서 현재의 타키와 과거의 미츠하가 각자의 시간에서 혜성이 지구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에 잠깐 나오는 위치 상으로, 타키는 도쿄에, 미츠하의 고향은 (정확하지 않으나)아오모리와 아키타 사이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로 표기되어 있다. 지구 반대편까지는 아니더라도 혜성이 떨어지는 위치나 이를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법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는 철저하게 두 사람의 동일 시점으로 묘사된다. 마치 타키와 미츠하가 하나인 것 처럼, 혹은 같은 인물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단 하나의 시점에서만 묘사되는 혜성의 이미지는 360도로 돌려봐도 똑같은 동일시점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는 <너의 이름은>의 기저에 깔린 '인연의 실(赤い糸)'과도 이어진다. 두 사람이 하나인 것처럼, '운명'이라는 식상하지만 끈끈한 단어 속에, 혜성은 줄곧 한쪽의 면으로만 묘사된다. 마치 '이것만을 보고, 이것만을 생각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담이지만 신카이 마코토가 '별', 조금 더 확장해서는 '우주'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이번 영화에서 신카이 마코토가 얼마나 더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낼까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신카이 마코토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신카이 마코토의 손에서 탄생한 무수한 우주들은 부메랑이 되어 이 감독의 영화 자체를 지겹고 식상하게 만드는 평가로 작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잠시동안 곰곰히 생각했다. '결국은 그걸 보러 다시 극장을 찾을 것 아닌가?' 식상함을 알면서도 그 식상함에 녹아내려가는 것, 100년도 더 된 고전영화가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하늘과 식상한 로맨스, 눈물, 신파를 보러 발걸음을 옮기는 많은 사람들처럼 신카이 마코토의 우주도 늘 그 곳에 있길. 언제도록 변치 않고 '뻔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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