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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27. 2018

<러브 레터>(1995)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러브 레터>를 되짚으며 와타나베 히로코(나까야마 미호)가 들판에서 죽은 옛 애인을 향해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시나요)'를 외치는 장면을 회상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늘 <러브레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영화의 시작, 히로코가 눈 덮인 동산에서 일어나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는 3분 가량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린다.


<러브레터>의 메인 포스터 이미지가 되기도 했던 이 장면은 설산에서 조난당한 옛 애인의 죽음을 떠올리며 히로코가 숨을 최대한 참았다가 훅 하고 내뱉는 짧은 순간을 보여준다. 물론 이 장면은 히로코를 비롯해 히로코의 죽은 애인 후지이 이츠키와, 그의 동명 동창인 또 다른 후지이 이츠키(여자/1인 2역)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기 전이므로 어떤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리기 불가능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지나 죽은 후지이 이츠키의 옛 사랑을 거의 모두 드러냈을 때, 그제서야 한꺼번에 몰려오는 히로코의 상실감이 이 첫 번째 시퀀스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러브레터>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지만, 두 번째 관람 이후 줄곧 첫 번째 장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마음에 걸렸다. 숨을 있는 대로 참았다가 뱉어내는 히로코. 히로코의 옆 모습에 고정된 카메라가 그녀의 호흡을 담아내는 그 짧은 순간은 <러브레터>가 단순 멜로에서 그치지 않고 죽음과 삶의 경계, 혹은 죽음으로 가름되어지는 인간과 인간의 이별을 단조롭지만 아름답게 고심해내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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