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해 좀 길게 다룰 여력은 별로 없어, 막 돌비시네마에서 첫 관람을 마치고 나온 김에 몇 가지 단상이나 기록하려고 블로그를 열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우려했던 지점, 그리고 원작과 비교해 바뀐 지점, 혹은 원작과 상관없는 여러 가지 지점들에 대해.
결과적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경험이 좋았냐고 묻는다면(맞다, '경험'이라 할만 하다) '앱솔루틀리 예스'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 이 영화를 일부러 돌비시네마에서 관람하고자 별렀던 이유 중 첫 번째는 '음악'이 중요할 것이고, 두 번째는 '뮤지컬 시퀀스'를 온전히 즐기고 싶어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안 봐도 비디오지만, 두 번째 이유는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진 긴가민가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뮤지컬'로 승부를 볼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 반 호기심 반. 그런데 막상 까보니, 두 번째 이유가 무의미해졌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것이 시네마다'라는 듯 정말 완벽에 가까운 뮤지컬 시퀀스를 보여주지만, '뮤지컬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걸로 승부는 보는 영화는 분명 아니었고 고전의 이야기를 기본 줄기를 굳게 남긴 채 현대적으로 부분 각색해 '2022년의 현재에는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해 준다고 해야 할까. 여러 장면들을 보다보니 단박에 진 켈리의 영화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스필버그가 일부러 비슷한 연출 방식을 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굳어지게끔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고전에서 차용한 뮤지컬적 연출을 전부 수용하는 대신 카민스키 촬영감독과 만들어왔던 전작들의 카메라 워킹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것 때문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장점이 백분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인물을 중심으로 좇지 않고 주변의 도구나 배경을 이용해 은유적으로 인물의 미래, 혹은 현재를 나타낸다든지 다가오는 사건을 암시하는 등의 연출은 다분히 '영화적'이기 때문이다.
주요 사건과 자잘한 에피소드를 거의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된 이야기의 낡고 삐걱거리는 지점은 여전하다. 하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보여주려고 했던 건 그런 낡은 지점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든지 현대적 변형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아닌, 사랑, 증오, 복수, 질투 등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감정들에 절여져 삶을 살아가는 군상, 결국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통용될 수밖에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민자들, 아메리칸드림, 재개발 등 현대 사회를 둘러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다양한 문제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이 영화의 버드아이뷰로 시작되어 주 인물들을 갑자기 팝핑 하듯 등장시키는 장면 같은 것들이 시사하는 지점들, 반짝거리는 '맘보' 시퀀스 속에서 얼핏얼핏 드러나는 인물들의 부딪힘, 인물들의 어색한 충돌들.
암튼 이런 것들과 별개로, 이 영화를 보자마자 '스필버그는 영화의 신이다'라고 또다시 읊조렸다.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뮤지컬 영화인데, 시퀀스를 이렇게 완벽하게 만들어버리면 그다음은 어쩌라고요(...마치 1차 세계대전 넘버 원인 <1917>과 2차 세계대전 넘버 원인 <덩케르크>가 나왔을 때처럼)싶은 마음이 불쑥 들기도 했다. 극중 남자 주인공 토니 역을 맡은 안셀 엘고트의 삐걱거리고 섞이지 않는 연기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볼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스크린이 크고 사운드가 어느 정도 받쳐주는 관에서 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돌비시네마 선택은 올해의 가장 잘한 극장 경험 중에 하나가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