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의지

by 강민영

사람은 누구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한 번쯤은 꿈꾼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좋고 나쁨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에 강렬하게 자리 잡은 순간에 대한 충격으로 인해, 그 순간과 그때의 기억에 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반복해서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기억이란 참 특이해서, 원하는 순간을 부분적으로 지워 없앨 수도 있는 반면, 완벽하게 지워졌다 싶은 그 순간을 말 한마디, 사물, 심지어 글자 하나를 통해 일순 복귀시킬 수도 있다. 물론 후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걸 줄곧 '역행 의지'라고 불러왔다. 내게 이런 '역행 의지'의 기제는 매우 단순하다. 그럴 일은 별로 없지만 불현듯 좀 기분 나쁠 정도의 외로움을 겪거나, 혹은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과거의 기억들을 퍼즐 조각처럼 늘어놓고 재조립할 때다. 뜸한 만큼 그 강도는 굉장히 세서, 이런 생각이 들 때는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곤 한다. 윈도우를 예로 들면 시스템 복원 시점을 여러 가지 곳으로 찍어두었다고 해도, 이후 수 차례의 백업과 포맷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단 하나의 시스템 복원 시점만을 좌표로 삼게 되는, 그런 최초이자 최적의 지점이 될 것이다.


아무튼 그 좌표의 미세한 지점들 중 하나는 2013년 인도 북부를 여행할 때 '마날리'라는 지역에서 '레'라는 지역으로 미니버스를 타고 오르던 19시간이다. 마날리와 레는 고도차가 1,500m 정도다. 얼핏 그리 힘든 여정은 아니라 생각되겠지만 총 다섯 고개에 거쳐 최고 5,400m를 찍고 내려왔다 올라가기를 반복하게 되기에 고산병이나 차멀미가 있는 사람들은 버티기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여름에만 길이 열리는 신비의 도시인 레는 여름의 인도를 여행한다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마력을 가진 곳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 구간을 이런 방식으로 여행하곤 한다. 물론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레까지 운행하는 국내선 비행기가 있긴 하지만, 대략 2~3천 미터의 고도를 한 번에 움직이는 것이므로 그와 맞먹는 엄청난 고산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그 좌표는 새벽 2시에 출발해 그날 저녁 9시에 도착하는 약 17시간 중 가장 험한 고개인 '로탕 라'를 지나는 구간의 시간,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의 시간이었다. '로탕 라'는 약 4000미터에 달하는 고개로, 이 길의 마지막으로 만나게 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갯길'인 '타그랑 라'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곳이지만 새벽에 이 길을 통과해야만 하고 수 백 가지 고개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운전사나 여행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구간이다. 이미 히말라야를 여러 번 오르내리며 고산증이 없음을 확인한 나에게 이 구간은 신기루에 가까운 길이나 다름없어서, 잠도 오지 않고 잠을 청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으로 창 밖에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동이 틀 무렵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버텨냈다. 이것이 좋은 기억인지 나쁜 기억인지는 정확하게 분간하기 어렵다. 당일 새벽 3시 45분을 전후로 미세한 눈사태로 인해 차가 약간 기우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질끈 감은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여행객들은 이미 미미한 고산증을 겪으며 수면제와 혈관확장제를 섭취하고 잠에 빠진 이후였다. 이 순간만큼은 나와 기사 아저씨 둘만이 이 버스에서 살아있는 마지막 생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현기증이 올라왔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나쁜 기억'에 속할 것 같다. 그때의 덜컹거리던 바깥을 아래의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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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번째 고갯길을 넘으면 이런 아름다운 설산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겉옷을 있는 대로 꺼내 입고 침낭마저 둘러야 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의 새벽 설산은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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