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추천작은 오랜만에 디즈니플러스에서 골라 본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 픽사의 단편영화 <바오>의 도미 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각본 또한 담당했다. 극장 개봉을 노리다가 오미크론 확산으로 디즈니플러스로 직행해 지난 3월 11일 단독 공개되었다.
'메이린 리'라는 13세 소녀와 그 친구들의 성장기를 모토로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메이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에 관심이 항상 쏠려 있고, 다양한 감정을 소비한다. 메이는 부모님, 그중에서도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 흥분하면 거대한 레서판다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메이는 이 엄청난 비밀을 숨기기 위해 온신경을 집중한다.
디즈니와 픽사를 통틀어 낸 장편 애니메이션 중에, 유일하게 현대 아시아계, 그것도 사춘기를 겪고 있는 질풍노도의 시기 한가운데 있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렛서판다의 귀여운 캐릭터 때문에 끌렸지만, 내재된 의미와 굵직한 스토리 라인이 지금까지 이쪽 장르에서 시도되지 못했던 것이라, 정말 즐거웠다. 특히나 중심 소재인 '엄마와 딸' 관계의 해소에 대해서는 꽤나 직격탄인 셈인데, 기존 판타지 장르에서 설화나 고대 서사로 소비되어 왔던 소재에서 벗어나 직설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오는 지점들이 많다. 무엇보다 사춘기 소녀의 2차 성징에 대해 다루며, 십 대 때에 겪는 여성의 생리, 신체 변화, 다양한 감정과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때려 넣은 애니메이션이라 좋았다. 이렇게 많고 다양한 생리대가 장편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적이 있는지도 생각해보았고, 사춘기 시절부터 쭉 겪게 되는 여러 징후들을 여성의 시점과 관점에서 다채롭게 다룬 작품이 있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배경은 2002년, 장소는 캐나다 토론토 소재인데, 2000년대 초반에 십 대 시절을 보내고 있는 메이의 일상과 2000년대 초반에 메이와 꼭 같진 않지만 비슷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던 때가 겹쳐 더 공감하며 즐길 수 있었던 듯. 극 중에 폴더폰과 라디오를 사용하고 그림을 그리며 그룹 '포타운'에 열광하는 동시에 엉뚱한 상상을 하는 이 사랑스런 캐릭터를 보며 어린 시절을 소분 떠올릴 수 있었다.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빌리 아일리시의 오빠)가 극중 보이밴드인 '포타운'의 노래 세 곡을 모두 작곡했는데, 이 '포타운'의 면모와 음색이 '백스트릿보이즈'나 '웨스트라이프', '엔씽크'를 떠올리게 해, 또다시 그때 그 시절 그들을 좋아하던 때로 풍덩 추억 여행할 수 있었다(도미 시 감독은 샤이니, 2PM 등의 케이팝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픽사(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중 유일하게 주요 보직을 모두 여성이 맡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메이킹 필름 역시 디즈니플러스에서 <판다를 안아줘!: 메이의 새빨간 비밀 비하인드>라는 제목으로 제공 중인데, 이 자체가 하나의 휴머니즘 다큐멘터리 같아서 본편만큼 즐겁게 관람했다. 특히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감독과 각본을 맡은 도미 시 감독의 개인사가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투영되었는지, 동료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터닝 레드' 팀의 다양한 팀원들의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긍정적으로 봤다면 이 메이킹 필름도 꼭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네버 해브 아이 에버>의 데비 역할로 유명한 메이트레이 라마크리시난이 극중 메이의 친구로 등장한다. 메이의 엄마 '밍'의 역할은 산드라 오가 연기했다.
여담이지만, <메이의 새빨간 비밀>보다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불리고 있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문장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 아마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원제인 'Turning Red'를 먼저 접하지 않았다면, 나도 '새빨간 거짓말' 쪽이 더 친숙해질 뻔했다. 구글에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을 치면 자동으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뜨니, 그나마 다행인 셈.
*아주 짧은 쿠키가 있다! 스트리밍으로 볼 때 놓치기 쉬우니, 크레딧 이후를 꼭 체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