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보태보는 <놉> 후기.
<겟 아웃>과 <어스>로 호평을 받아왔고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놉>이 개봉했다. 개인적으로 조던 필 감독의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가 '공포영화의 범주'에서 한 획을 긋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지만, 연출을 굉장히 영리하게 잘 구성해내는, 이른바 어디에 내놓아도 '유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감독이라 생각해오고 있다. <겟 아웃>은 신선했지만 <어스>는 그보다 못했지만 두 영화 모두 연상하고 기억할 만한 커다란 은유의 영화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좀 더 영화 본질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조던 필의 세 번째 영화를 원했고 그 목마름을 <놉>이 가득 채워주었다 생각한다.
<놉>은 코즈믹호러를 표방하고 있으나 영화 전반을 '공포영화'의 범주에 넣기는 좀 어렵다. 고전적인 공포영화의 기법이 튀어나오는 전반부를 제외하면 후반부는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SF에 가까운 서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의 주된 서사나 장치들보다, <놉> 자체는 흥미로운 영화적 체험에 가깝고 그 때문에 <놉>을 조던 필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선 두 영화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의 영화였고, 개인적으로는 조던 필이 이대로만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싸인>과 <돈 룩 업>의 변형(하지만 심각한 버전)이라는 생각이 좀 들었다. 물론 이들과는 좀 다르지만, 플롯 자체는 전반적으로 외계인, UFO 서사가 가져올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는 셈.
빼놓을 수 없는 화면비 이야기. <놉>은 조던 필이 아이맥스 화면비를 허투루 쓰지 않는 작금의 유일한 감독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120분 남짓의 분량 중 40분가량이 아이맥스 화면비로 찍혔는데, 이중 감정선을 더 심화시키고 싶은 장면, 영화라는 매체의 쾌감을 안겨주고 싶은 장면 등을 여기저기 섞어, 이 화면비로만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에, <놉>을 제대로 관람하고 싶다면 일반 상영관이 아닌 아이맥스 상영관(가능하면 2.20:1이 지원되는)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소리가 중요한 영화긴 하지만 그보다 화면비 변화가 압도적이라, '굳이 아이맥스에서 봐야 할까' 싶어 아이맥스 관람을 좀 주저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음. 아이맥스가 아니면 감독이 의도한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서, 제한된 감상이 좀 아쉽긴 하지만.
<놉>은 조던 필이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은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조던 필이 평소에 좋아하거나 좋아한다고 밝힌 것들에 대한 오마주가 상당히 짙게 깔려 있다. 영화 속 후반부에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는 거대 비행 동물의 모습은 <에반게리온>의 사도 하나를 떠올리게 만들고, 대놓고 '이건 오마주가 분명하다!'며 박수치게 만들었던 후반부의 장면은 <아키라>의 그것을 가져왔으며 마지막 장면은 다양한 서부극의 클라이맥스 씬들을, 초중반의 플래시백은 80년대를 주름잡던 미국의 TV시트콤들을 연상케 한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제작을 통해 오래전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던 그 열정 그대로(...) 담겨 있기도 하다. 여러 장르의 부분부분을 가져오면서도 그걸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매끄럽게 조율한다는 점에서 정말 '볼 만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영화.
조던 필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영업자' 팟캐스트에서 한 번 다루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궤가 떠오르게 만드는 감독으로, 그리고 삼세번의 법칙을 성공한 감독으로, 몹시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아무튼 이건 최소 아이맥스, 아니면 돌비(사운드와 어두운 장면 잡는 게 중요함) 정도에서 감상하셔야 영화를 제대로 봤다고 말할 수 있겠다.
*뱀발이지만 비행 동물이 내는 소리가 <듄>의 그것과 몹시 닮아 영화를 보는 내내 <듄>의 특정 장면이 생각났다. 우연의 일치로 겹친 것이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