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없습니다.
요즈음 극장에서 단 하나의 영화만 봐야 한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 가능한 큰 화면에서, 가능하면 좋은 사운드로 보면 좋겠으나 내가 원하는 돌비시네마 포맷은 한국에서는 상영하지 않을 모양이다. A24의 배급작으로, 양자경 주연작인 것 외에 국내 개봉 영화 중에서 가장 성의 없게 번역된 제목 역대급으로 거론되어 역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영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여러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챕터별로 영화의 성향이 확 바뀌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양자경의 멀티버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멀티버스라는 것에 대해 아주 거창한 지점부터 시작하지 않는 점 또한 특별하다. '멀티버스'라는 소재는 이미 마블 등의 히어로 캐릭터물이 주가 되는 영화/드라마들에서 주 소재로 자주 사용해왔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만큼 멀티버스라는 단어와 소재의 장점을 확연하고 확고하게 연출해 관객들에게 내보여주는 영화는 없었다 생각된다. 아주 사소한 주제로부터 시작해 이야기를 확장하고 세계를 확장해가는 방법을 아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자마자 바로 '이런 게 멀티버스 영화지!'라고 중얼거렸다.
초반에는 액션영화의 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모든 전말이 드러나고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의 기로에 놓이는 2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영화가 끌고 가는 대로 멱살 잡듯 끌려다니며 울고 웃고, 또다시 울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모든 캐릭터를 한데 모아 '선함'의 범주로 솎는 마지막 장면부터, 후반부 뜬금없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이 종국에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며 단 하나의 생각과 감정만 벅차오르게 만들 때 즈음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저 유머라고 생각했지만 단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는 장면이 없이 고르게 퍼져 있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 여러 개의 멀티버스에 놓인 각자의 삶과 드라마라는 걸 떠올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또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회귀하고 싶어진다.
보기 드물게 N차 관람을 요하는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야외 상영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었는데, 당시 분위기 또한 아주 좋았다고 한다. 이런 영화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며 웃고 울고 소리 지르고 안타까워하는 기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