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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22. 2022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후기

뒤늦게 올려보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후기. 예전에는 하나하나 공들여 리뷰를 남기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때가 도대체 언제였나 싶다. 아무튼 이번에는 영화제에서 영화를 엄청 전투적으로 본 건 아니기에, 이미지와 함께 후기라도 하나 남겨보아야 겠다 결심. 순위를 매겨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본 영화가 그리 많지도 않고 영화별 순위는 나중에 연말 때 개봉영화, OTT드라마 등 되새길 때나 생각하자 싶어 간단한 감상을 남긴다.



<조이랜드>

파키스탄에서 제작되어, 세계 영화제들의 주목을 받은 사임 사디크 감독의 영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도 상영이 예정되어 있던데, 개봉할 일은 아마도 전무하니 곧 시작할 프라이드영화제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 파키스탄의 가부장적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감정의 불씨가 그야말로 극이 전개될 동안 활활 타오르며, 종국에는 이 가정을 파괴하는 씨앗이 되어 버린다는 설정. '트랜스젠더'에 대해 정면으로 다룬 영화인 동시에 이슬람 문화권의 제도적 가족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영화. 결코 편하게 볼 수 없는 영화였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야자수와 전선>

선댄스영화제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올해 부산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영화. 제이미 덱 감독으로,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 다루는 영화인데, 감독의 동명 단편 영화를 장편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여성감독의 연출작이라 별다른 트리거가 없겠거니 하고 들어갔지만, 실제로 중반에 탈출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만큼 영화가 노골적이고 힘들었고, 특히나 마지막에 멍한 울림을(좋은 감정이 아닌) 주고 끝나버려 한동안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쉽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고, 개봉한다고 해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였다.



<칼날의 양면>

클레르 드니 감독의 신작이라 봤지만, 이제 이런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는 못 보겠다 싶었다. 사실 <백인의 것> 때의 클레르 드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일말의 기대는 하지만, 뱅상 링동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것도 선택하지 않았겠지... 두 시간 내내 세 남녀가 북치고 장구치고 치고 박는 영화인데, 마지막 장면은 아주 큰 울림을 줄 지언정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결코 녹록하진 않았다.



<페어리테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 친애하는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신작으로, 꽤 오랜만의 작품이기에 걱정이 앞섰지만 역시나 기우였다. 이런 영화가 정말 영화제의 보물이자, 영화제의 참맛이라는 생각. 제목은 '페어리테일'이지만 전혀 동화적인 이야기는 아닌, 푸티지의 조합이다. 실존했던 사람들(주로 독재자)의 아카이브 영상을 디지털로 작업한 후에 후시 녹음을 입혀 제작한 대화와 연출로 이루어진 영화. 후시 녹음 또한 생전의 목소리를 교묘하게 조합해 실재처럼 만들었기에,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소쿠로프 만이 할 수 있는 영화이자 이런 게 '뉴 시네마'라 느껴질 정도로 아주 좋았다.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혁명에의 제안>을 연출한 비나이 슈클라 차기작. 인도의 극우주의에 기댄 정치 성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화로, 오랜 시간 NDTV 뉴스를 진행해 온 인도의 저널리스트 라비쉬 쿠마르를 좇는 다큐멘터리다. 신뢰하는 감독인 동시에 NDTV나 라비쉬 쿠마르나 인도의 여러 매체가 나에게는 모두 익숙했기 때문에, 즐겁게 보았고 <뉴스룸> 혹은 <굿나잇 앤 굿럿>을 떠오르게 하는 속도감 있는 연출과 서사가 너무 좋았다. 비나이 슈클라의 다음 작품이 어서 보고 싶을 정도.



<이니셰린의 밴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 모두가 사랑하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작으로, 제작 때부터 <킬러들의 도시>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올 수 있을까, 그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기대되었던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나의 마틴 맥도나 베스트가 되었다...! 베리 키오건이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수상하지 않은 베리 키오건이 이상할 정도로 그의 캐릭터를 잘 썼고, 콜린 패럴, 브랜던 글리슨, 케리 콘돈 누구 하나 빠질 데 없이 너무 완벽한 연기를 보여줘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 이 영화야 말로 개봉하면 다시 극장에 달려가 보고 싶다.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자체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이 너무 적나라하고 유려하게 연출되어 혀를 내둘렀다.



<돌거북이>

우밍진의 신작이라 기대했지만, 우밍진도 이제 과거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외딴 섬의 창작된 설화에 기댄 영화로, 복수가 복수를 낳고, 그 복수가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이지만 이미지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은 없었다.



<비크람>

마지막으로, 대망의 <비크람>. 개봉 당시 인도를 포함해 월드와이드로 흥행했던 영화로, 이번 부산에서 야외상영으로 관람했다. 오리지널이 1980년대에 제작되었고 이 <비크람>은 그 후속편인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카말 하산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최근 정치계에 발을 담근 대스타지만 여전히 건재한 액션 배우임을 보여준 <비크람>. 인도영화 치고 수위가 아주 높고, 올해 대두된 인도의 아주 큰 문제인 마약 탕진에 대한 내용 또한 담고 있어 현지에서 아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야외상영은 몹시 추웠지만 다같이 웃고 울고 소리지르며 보니 재밌더라. 인도영화들은 모종의 이유로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영화제를 등지게 되었는데, 모쪼록 내년에는 더 많은 인도 흥행작들을 부산에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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