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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Dec 04. 2022

루카 구아다니노의 <본즈 앤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어차피 개봉할 거니까'하고 스킵했던 영화 <본즈 앤 올>을 봤다. <아이 엠 러브>부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실망한 적 없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이라 제법 기대를 했고, '식인 소년과 소녀'가 나온다는 점에서 한층(!) 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영화 개봉 직후에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돌비시네마에서 상영하고 있어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물론 결과적으로 영화도 좋은 편이긴 했다. 마크 라이런스가 엄청 섬뜩하고 소름 끼쳐 이 부분만 제외한다면...


아무튼 <본즈 앤 올>은 일종의 로맨스 영화임은 분명한데, 로맨스 장르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아주 큰, 그러니까 '카니발리즘(혹은 식인)'이라는 장르를 우선 넘어야 하지만, 이런 쪽에 별다른 트리거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주 만족하고 볼 만한 영화였다. 시종일관 공허한 감정과 부모에 대한 슬픔과 증오에 살고 있는 테일러 러셀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무엇보다 병약한 연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움을 보여주는 티모시 샬라메의 피칠갑된 얼굴과 불안한 표정이 압권이었던 영화. 사실 이 영화를 완벽한 '로맨스 장르'라고 하기엔 사랑에 앞서 홀로서기라는 생존의 감정 자체가 절절해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 '사랑'이 포함되고 그게 아주 중요한 역할은 하지만 결과적으로 '로맨스 장르'라 수사하기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굉장히 슬픈 영화였고, 영화의 제목인 '본즈 앤 올'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지막 장면에서 그걸 한번 더 곱씹게 될 때도, 슬픔의 감정이 먼저 올라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으니까.


참고로 루카 구아다니노가 배우들에게 레퍼런스 영화로 보낸 아래 영화 목록을 보면, 이게 로맨스 장르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아래 영화들의 어떤 장면이나 줄거리, 주연 배우의 감정과 표정 등을 생각하며 <본즈 앤 올>을 다시 떠올리니 꽤 흥미롭다.


로베르 베르송의 <사형수 탈출하다> /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 /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 /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 /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


두 번 보라면 지금 당장은 글쌔? 싶지만, 어떤 면에선 루카 구아다니노의 예전 영화들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영화라는 생각은 떨칠 수 없다. 그리고 적어도 티모시 샬라메의 팬이라면 놓치지 말고 챙겨봐야 할 영화. 고어를 견딜 수 있든 없든,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를 보며 또 한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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