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없습니다.
단상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아바타:물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아바타:물의 길>을 보러 가기 전에 <아바타>가 처음 개봉했을 때를 떠올려봤다. <아바타>는 3D 작업의 신호탄을 이뤘고 어느 정도 영화사를 바꾸게 된 작품이기도 했지만 단 한 장면도 머릿속에 기억되는 게 없을 정도로 기술적인 부분 외에 나머지는 평이한 작품이었다. 물론 제이크 설리가 자신의 영혼을 아바타의 육체에 옮겨 제이크의 아바타가 새롭게 눈을 뜨는 결말은 인상적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의 쾌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후 제임스 카메론의 흐름을 봤을 때(놀랍게도 그와중에 <알리타: 배틀 엔젤>이라는 좋은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아바타:물의 길>은 애초에 별로 기대가 되지 않던 작품이었다. 5년 여의 세월이 집약된 기술의 발전이 어떻고 저떻고를 떠나, 애초에 '아바타' 시리즈의 서사는 이미 <아바타>에서 맺음되었고 그 속편들은 전부 1편의 사이드킥이라 생각했으니.
<아바타:물의 길>을 보고 나온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물론 기술적인 완성도, 그야말로 높은 퀄리티의 CG와 하이프레임의 장면들만 놓고 보았을 때 입이 떡 벌어지던 순간들은 있다. 극중 해양생물 크리쳐나 후반전이 시작되고 클라이맥스 전투씬의 배경인 메케이나 부족민들의 마을과 바다에서의 묘사는 몹시 아름다웠다. 애초에 '아바타' 시리즈가 탄탄한 서사로 시작한 것은 아니니만큼, 그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현대영화사의 어떤 시각적 성취를 넘어섰다는 평에도 대체로 동의한다. 전작 이상으로 화려한 비주얼의 향연이며, 특히 앞서 말한 바다를 둘러싼 모든 장면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영화적인 영화였냐'고 물으면 예나 지금이나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사실 '아바타'는 영화적 완성도를 보여주기보다 기술의 성장을 보여주는 이를 테면 '차력쇼'에 가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아바타:물의 길>에서도 어떤 보편적 서사의 흐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20분 이내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서사와 떨어지는 개연성으로 3시간 20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을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특히나 영화의 모든 부분에서 '가족'을 중시하고 '가부장'을 중시하는 이야기로 갈음되고 결말 맺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가변프레임 때문에 영화보고 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동어반복만 주구장창 세 시간 내내 하는 서사 때문인지도... 더불어 나에겐 트리거가 되는 동물에 관한(정확히는 톨쿤) 학대와 학살 장면이 몹시 견디기 어려웠다. 이 장면 때문에 조금 울기도 했지만, 울게 만드는 영화와 좋은 영화는 별개이니 뭐 그러려니 하구나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은 경험해봐야 하지 않나 싶은데, 다만 이걸 3D나 HFR 가능한 특별관을 제외하고 일반 상영관에서 본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일반 상영관의 2D는 <아바타: 물의 길>의 장점을 대체로 담아내지 못할 것이 뻔하며 그렇다면 서사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서사..? 승부..?는 아주 택도 없다. 개봉할 때 돌비나 아이맥스 등 좋은 컨디션의 특별관에서 챙겨보는 것 정도는 추천하고 싶지만, 그외의 상영환경에서라면 말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