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은 오리지널 시리즈인 <1899>.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방영된 독일 시리즈 <다크> 제작진이 참여해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기도 하다. <다크> 종영 이후 이 제작진이 만든 새로운 시리즈이며, 2020년의 인터뷰 당시 독일 TV시리즈 역사상 가장 거금이 투입될 것으로 발표해 제작 단계부터 주목 받았다. 연출은 <다크>의 바란 보 오다르가 전 에피소드를 맡았으며, 에밀리 비첨이 주연을 맡았다.
<1899>는 제목 그대로 1899년을 배경으로, 런던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는 '케르베로스'에 탑승한 배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다. 이 배에는 유럽을 벗어나 미주로 가야만 하는 이민자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들 등 다양한 계층과 계급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뉴욕으로 향하던 중 4개월 전에 실종된 선박인 '프로메테우스'에서 들려오는 구조 신호에 잠시 운항을 멈추게 되고, 이로 인해 선장과 선원들은 다양한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배에 타고 있던 영국 최초의 여성 의사이자 뇌와 신경 전문인 '모라(에밀리 비첨)' 또한 이 과정에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다크>와 비슷한 궤를 가진 드라마지만 <다크>보다는 좀 더 대중적으로 구성되었다. 초반에는 선박 안의 다양한 계급을 다루는 시대극으로 꾸며졌으나 4개월 전에 실종된 후 동일한 구조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오는 선박 '프로메테우스'의 발견 이후 이야기는 '케르베로스'에 탑승한 다양한 인물들이 동시에 겪는 기이한 현상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적으로 <다크>는 제목처럼 어둡고 습하며 말 그대로 '답답함' 그 자체의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풍기는 그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파이널 시즌까지 지켜봤는데, <1899>는 <다크>보다 좀 더 힘을 뺐지만 특유의 분위기는 남이있어 어쨌든 호불호가 아주 많이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크>는 중도탈락자가 많았던 반면, <1899>는 그보다 조금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실종 사건과 더불어 뉴욕으로 가야만 하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배에 탄 사람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사람들의 교차점을 보여주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망망대해에서 이상 현상을 겪는 사람들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드라마의 분위기를 가볍다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어 정적이기도 하지만, 선박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 외에 선박의 주연들의 불안과 그 불안이 기인된 과거의 몇 장면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단단하게 묶여 있어 전개 자체는 제법 빠른 편이다. 시리즈 마지막에 다다라 큰 반전이 하나 나오는데, 반전을 차치하고서라도 극중 분위기는 판타지와 호러, 미스터리를 유려히 오가는 편이라 개인적인 취향에서는 적극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
**아래부터 스포일러 입니다**
<다크>와 마찬가지로 <1899> 또한 시즌제가 기대되는데, 사실 <1899>의 공개된 시즌1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프롤로그로 존재하고, 이 드라마의 세계관의 중점을 보여주는 건 역시 시즌2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 선박 '프로메테우스'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와 여러 사건들은 '현실'이 아니며, 이들은 모두 시뮬레이션에 속해 있었고 이를 통제하고 있는 사람이 주인공 모라의 가족이었다. 1899년도 실제가 아니고 프로메테우스나 케르베로스도 실제가 아닌, 시뮬레이션 루프의 하나. 그리고 이 시뮬레이션에서 깨어난 모라가 마주하는 세계는 2099년 10월 19일의 우주다. <1899>의 시작부터 약간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역시 생각했던 반전이 그대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반전으로 가기 위해 아주 정밀하게 쌓아 올린 서사들이 너무 매력적이라 허무하다는 생각보단 시즌2가 기대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마 넷플릭스 추천작들을 소개하며 본문에 스포일러 처리를 한 건 이게 거의 유일하지 싶은데, 요즘 이렇게 시즌제를 통해 시청자를 기다리게 하는 드라마에 익숙해졌으므로 시원하게(!) 결말을 오픈하고 같이 시즌2를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랄까...
*<1899>는 시즌 2의 행보가 무척 기다려지는 영화였지만 2022년 12월, 결국 시즌 2 제작이 취소되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참 많이 아쉬웠지만, 뭐 어쩌겠나 싶기도. 언젠가 돌아와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