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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May 01. 2023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애프터눈 드림>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은 인도 영화로, 남부의 주요 두 언어인 말라얄람과 타밀어로 만들어진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작품인 <애프터눈 드림>. 말라얄람어권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필리세리가 감독을, 역시 말라얄람 문학권에서 번역/시나리오/평론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이는 S.하리쉬가 각본을 맡았으며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말라얄람의 거물급 배우 맘무티가 제작을 도맡았다. 2023년 1월 남인도권에서 개봉했으며 비평적인 성공을 거둬 넷플릭스로 유입되어 스트리밍되기 시작했다. 흔히 아는 전형적인 볼리우드나 톨리우드의 영화와는 조금 많이 동떨어진 영화로, 러닝타임도 몹시 짧으며(109분) 군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타밀나두주의 성지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 케랄라 출신 제임스(맘무티)는, 버스에서 잠깐의 낮잠 이후 돌변한다. 잘 가던 버스를 세우고 갑자기 낯선 마을에 뛰쳐 들어가 어떤 집에 익숙하게 들어가 그 집의 주인 행세를 하기도 하며, 더욱 놀라운 건 제임스가 전혀 알지 못한 타밀어 또한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다. 제임스의 이 이상한 행동에 어리둥절해진 건 제임스의 가족뿐 아니라 그가 주인처럼 눌러 앉아버린 집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애프터눈 드림>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영화다. 이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보려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시에 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두 언어의 사용지인 '타밀나두'와 '케랄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남인도를 이루는 큼지막한 두 주인 케랄라와 타밀나두는 각각 남인도 왼쪽과 오른쪽에 위치한 주로, 아래 인도 지도의 제일 하단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두 주는 아주 밀접하게 붙어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북부와 다른 드라비디안이며 생활 방식이나 음식도 90퍼센트 정도 일치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영어를 쓴다. 말라얄람과 타밀 언어의 뿌리는 하나기에 마치 힌디어와 벵갈어가 몇 가지 단어를 공유하거나 힌디어와 우르두어가 몇 문장을 공유하듯 이곳의 언어도 미묘하게 겹치긴 하지만, 말라얄람어를 쓰는 사람이 타밀어를 듣거나 타밀어를 쓰는 사람이 말라얄람어를 들으면 서로 혼동을 느낀다. 인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언어를 하나로 획일화할 수 있는 국어가 존재하지 않기에 북부와 남부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영어를 사용하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주 별로 사람들의 언어, 생활 방식, 문화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애프터눈 드림>을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애프터눈 드림>의 많은 장면은 꽤 긴 테이크로 이어지는데, 이들 대부분은 말라얄람어를 구사하는 케랄라주 시민 제임스가, 갑자기 연고도 없는 타밀나두주의 시골 마을로 뛰어들어 이동하는 장면들에 사용된다. 대문도 없이 마치 커다란 가족처럼 지내는 시골 마을을 제임스가 훑으며, 타밀 고유의 음식을 즐기고 타밀 고전 영화와 드라마의 주제가를 부르며 흥에 겨워하는 장면은 기이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진다. 아주 밀접한 위치에 놓인 두 개의 주가 사실은 너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암시하는 장면 또한, '경계'라는 단어에 놓인 여러 사람들의 다층적인 면을 꽤 흥미롭고 집요하게 묘사한다.


제임스의 이상 행동의 이면에는 사실 숨겨진 이야기가 있지만, <애프터눈 드림>은 이 하룻밤의 소동이 그것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정의내리지는 않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낮잠에서 깨어난 제임스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두 가지 결말을 유추해 볼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이 두루뭉술한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 제임스의 '일탈'을 통해 훑게 되는 타밀과 케랄라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 언어로 가름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문화와 그 문화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 그대로 '경계'이자 '경계를 그린' 영화로,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



*뱀발이지만 케랄라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애프터눈 드림>을 관람하고 바로 추천하게 되는 상황이 무척 재밌다. 케랄라는 내가 인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역인 동시에 가장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으로, 10년 전에도 말라얄람어권의 영화 몇 편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넷플릭스에 다양한 말라얄람어권 영화들이 타밀어권만큼 올라오고 있진 않기에, 이 말라얄람-타밀어가 믹스된 영화가 내게는 정말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부 인도를 여행했던 사람들에게도 분명 보석 같은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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