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취향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런 영화가 제도권 내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에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극명히 갈리는 평가에 흥행 성적도 좋지는 못한 편이나 이 영화에 깊게 매료된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킬링 로맨스>는 충분히 빛나지 않을까. 이원석 감독의 전작인 <상의원>은 보지 못했지만 장편 데뷔작인 <남자 사용 설명서>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결로 기대를 했고 그 기대에 몹시 부합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이원석 감독만의 특유의 매력이 빛나는 영화인데, 대략 보면 '와, 영화 진짜 맘대로 만든다'는 낌새가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데 그런데 재밌다... 정도라고 이 영화를 정의내릴 수 있을까.
개개의 웃음 코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전방위적으로 추천하긴 어렵지만,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정하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때로는 우주로 가는 영화지만 그 안에 모두가 '푸핫!'하고 웃을 지점이 분명히 있기에, 후반으로 가면서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밈과 풍자와 개그의 총 집합 속에 가끔 갈 곳을 잃기도 하지만 사실 중반 이후 쯤 되면 '아 모르겠다, 그게 중요하냐' 싶은 심정이 생기기도 한다. 아무튼 코미디 장르의 영화 중에서도 연출의 완성도는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킬링 로맨스>는 극장의 존재 이유를 불러 일으켜주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는 장면들이 많아서인지, 관객 타이밍이 좋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예의 OTT로 봤다면 금세 흥미를 잃었을 거란 건 분명하다.
<바빌론>에서 마고 로비의 연기를 정신 놓고 봤듯 <킬링 로맨스>에서도 이하늬의 주연 연기를 즐겁게 봤다. 음악이 어쩐지 좋다 했더니(행복과 레이니즘 빼고) 달파란이 참여해서 음 그렇군, 하는 모먼트가 이어졌다. <가오갤 3>이 개봉하면 극장에서 좀 더 찾기 어려울 것 같은데, 여하튼 노라조 뮤직비디오 이런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완전 취향일 테니 헐레벌떡 달려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