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상> 중+ 바니걸스 번안곡
1971년작 <하티 메레 사티>(코끼리는 나의 친구)는 한국에 최초로 수입되어 상영된 영화로, <신상>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1975년에 개봉되었다. 재밌게도 이 영화는 힌디어 영화이나 감독과 제작자는 모두 남인도, '타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개봉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티 메레 사티>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디즈니식'으로 발화된 영화이자 이만한 가족 영화가 없다는 평가를 얻고 있을 정도로 꽤 자주 상영되는 고전인데, 대부분의 중견 이상 인도 영화 스타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자랐으며 여전히 이 영화와 영화에 수록된 곡들을 추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티 메레 사티>의 감독은 MA 티루무감으로 1950년에 커리어를 시작해 80년대까지 약 3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한 타밀 고전 영화의 대표 감독이다. <하티 메레 사티>는 1967년의 타밀 영화인 MG 발루의 <데이바 차얄>(신의 뜻대로)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기본적인 구조는 같으나 원작은 리메이크 작품들만큼 흥행하지 못했다. <하티 메레 사티>의 흥행은 아무래도 당시 최고의 스타이자 볼리우드의 첫 번째 스타라고 평가되는 라제시 칸나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70~1980년에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그의 대표작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하티 메레 사티>다.
<하티 메레 사티>는 코끼리와 인간의 우애를 깊게 다룬 영화로, 1971년 당시 인도에서 가장 큰 히트를 쳤다. 1960년대 원작 영화에서 훨씬 발전했으며 인도 대스타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일 큰 원인은 인도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 평가되는 키쇼어 쿠마르의 이 노래, '짤 짤 짤 메레 사티'(가자, 나의 코끼리-친구-야) 때문이다. 키쇼어 쿠마르는 영국령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1940년대 후반부터 배우, 그리고 플래이백 싱어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그는 힌디, 벵골, 마라티, 말라얄람, 칸다나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했기에 인도에서 폭넓게 사랑받았다. 인도 영화계에서 키쇼어 쿠마르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영화사에 여러 번 획을 그은 인물인 그의 목소리가 바로 <하티 메레 사티>의 주제곡인 이 노래에 담겼고, 이 노래는 여전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곡이 아니더라도 <하티 메레 사티>의 다른 OST들도 정말 좋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서사와 연출, 거기에 키쇼어 쿠마르의 보석 같은 목소리로 어우러진 명곡들 덕분에 이 영화의 인기가 당시 최고조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2AOHgQcTYo
최근에 이 영화를 기억하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가 이 <하티 메레 사티>의 주제곡이 '라무는 나의 친구'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2인조 여성 듀엣, '바니걸즈'가 리메이크해 불렀다는 정보를 얻었다. 바니걸즈도 생소하고 '라무는 나의 친구'도 생소했는데, 이 번안곡을 듣는 순간 원곡과 정말 닮았다고 생각해 여러 번 들었다. 특히 맨 앞에서 '짤 짤 짤 메르 사티, 오 메르 하티'하는 부분은 그대로 가져왔기에 비교하며 듣기에도 즐거웠다. 당시 영화를 보고 이 곡을 들었다면 정말 흥겹고 즐거웠을 듯. 그때는 내가 전혀 모르던 때이기 때문에 나는 문헌과 자료들로만 찾아보지만, 극장에서 처음 인도 영화를 봤을 때 정말 즐거웠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그 이후에 인도 영화와 인도 여행 등에 관심을 가지고 떠나거나 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내에 인도 영화 주제가를 번안해서 내놓은 가수가 1970년대에 있었다는 건 내게 참 재밌는 일이었는데, 1970년대에 이 기세를 몰아 다른 인도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거나 했다면, 지금처럼 이벤트 성으로 인도 영화가 개봉하고 사라지는 일 대신 주기적으로 극장가에서 인도 영화를 찾을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일하던 당시 인도영화에 관해 이야기한 책 [발리우드 너머의 영화들](현재는 절판)을 통해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후에 격변기를 겪으며 90년대 여러 타국의 문화가 여럿 유입되고 야심차게 수입해 온 영화가 <하티 메레 사티>보다 더 멀리 떨어진 문화권의 영화인 <춤추는 무뚜>(타밀영화)였기 때문에 이 '삐끗한' 두 번째 발이 이후로 인도 영화에 대한 한국의 접근 방식에 꽤 고전을 낳게 한 이유라 생각한다. 물론 <춤추는 무뚜>는 대스타 라지니칸트가 주연을 맡았고 AR 라흐만이 OST를 만드는 등 당시 인도에서 엄청나게 흥행했고 그야말로 별들의 총출동과 다름 없던 영화였으나, 문제는 <하티 메레 사티>처럼 어느 정도 한국과 접점이 있거나 신기하고 신나는 영화가 아니라 교집합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흥행 참패 후 인도 영화 수입 자체가 주춤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최근의 인도 영화도 한국 시장과 교류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긴 하지만 이것은 다른 기회를 통해 새로 정리해볼 예정인 문제겠다. 여하튼 고전은 영원하다! 는 것을 보여준 대표 주자가 바로 <하티 메레 사티>의 주제곡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