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극장에서 즐길 만한 한국 상업 영화가 나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물, 즉 모종의 재난으로 세계가 멸망하다시피한 이후의 삶을 그린다. '재난물'과 '한국 영화'라는 두 단어가 만날 때, 으례 고개를 젓게 만드는 모든 장면과 서사들을 살짝 피해가는 동시에, 장르 자체를 놓치지 않은 영화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단 하나의 아파트만 재난을 비켜나가게 된 상황에서, 끝내 그것이 '정말로 낙원이었는지'를 스스로 되묻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극한의 상황과 극한의 재난 속에서 서로 다른 목적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뒤엉키고, 이는 곧 영화 속 군상이 아닌 영화 밖의,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자리하게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넓게 말해 그 은유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아포칼립스 장르의 한국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캐릭터들 사이에 완벽한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캐릭터가 고르게 매력적인 영화는 드물다. 특히 재난물에서 쓸데 없이 흩뿌려져 있는 신파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해도 개연성이 전혀 없어보이거나 혹은 너무 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고 적정선을 유지하며 깔끔하게 극을 마무리한다. 재난 상황 자체를 묘사하기보다 그 재난 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적인 서사 혹은 개연성의 부여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되지만, 그와 비례하게 펼쳐지는 배경의 디테일도 훌륭하다. 몇몇 장면들은 '이 상황에서 이런 장면을 넣는다고?'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블랙코미디적 성향이 강했는데, 그 전개와 설정이 튀어나와있거나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깔끔했다.
여름에 예정된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 중 가장 마지막으로 개봉한 셈이 아닐까 싶은데, 앞서 개봉한 영화들 중 류승완 감독의 <밀수>보다 재미있게 보았고 오히려 상업 영화의 세련미는 이쪽이 더 갖추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했다. 뭐, 두 영화를 당연히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으나 단순 대자본을 투자해 어느 정도 비슷한 손기점을 넘어야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영화들로 비교하자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만듦새는 압도적이다. 차주에는 <오펜하이머>가 개봉하기에 주말 흥행이 관건인 셈인데, 그 뒤에 비교될 만한 영화가 딱히 없기에 개인적으로 롱런을 바라는 영화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