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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Aug 16. 2023

놀란의 신작 <오펜하이머>

*스포일러라 느껴질 만한 설명이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에 관한 전기 영화도 아니고, 원자폭탄 혹은 핵실험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또한 시공간을 분열하고 합치거나 교차하는 시도를 전작들을 통해 다양한 버전으로 보여준 반면, <오펜하이머>는 공간의 분열 혹은 시간의 역행과 같은 실험적 측면에서 벗어나 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 특히 주인공 '오펜하이머'와 그와 대적하는 실제 인물이었던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의 시점으로 분할해서 영화를 보여주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영화 내에서 그 유명한 트리니티 실험이나 히로시마 원폭 사건 등 비교적 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하고 특히 트리니티 실험 자체는 <오펜하이머>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있지만, 이 또한 <오펜하이머>의 주된 성질로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는 드라마에 스릴러 장르를 끼얹은, 그러니까 놀란의 말대로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오펜하이머>는 크게 오펜하이머가 트리니티 핵실험까지 다다르게 되는 시간과,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 스트로스의 공개 청문회 세 가지의 시점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흑백과 컬러의 장면이 교차되는데,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컬러 장면은 오펜하이머의 시점에서, 흑백 장면은 제3자의 시점(스트로스 혹은 다른 주변인)에서 진행된다. 결국 오펜하이머를 일종의 '평가대'에 오르게 만든 두 개의 청문회의 이야기가 주가 되므로, 여기까지 도달하게 되는 과정은 얼핏 전기영화의 틀을 잡고 진행되는 듯하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등장하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 그러니까 IMAX 화면비 내에서 변화하는 다양한 장면들이 그 틀을 깨는 요소가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펜하이머>를 통해 오펜하이머의 내면에 접속하는 일종의 장치를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 분명하고 이는 곧 영화의 주된 관람요소가 되는데,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위해 IMAX 틀 내에서의 변화를 꾀한 것이 아주 성공적이었다 생각되진 않지만, 영화 내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의 거대한 중첩과 더불어 지속적인 플래시 효과, 오펜하이머 개인의 망상과 환상을 불균질하게 나열하는 설정은 <오펜하이머>를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도달하게끔 만드는 중요한 발판이자 핵심이 된다.



<오펜하이머>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 자체를 선으로도 악으로도 포장하지 않으려는 지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동시에,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인물, 거기에 애국심을 강요당하고 윤리적인 문제와 씨름하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주변 인물들(진, 키티, 프랭크)등에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아마 이것들을 제거하고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영화를 만들었다면 아주 다른 영화가 만들어졌으나, 이 상호관계를 묘사한 다양한 장면들이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라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장면이 지속적으로 겹치며 그가 개인적으로 고민했거나 혹은 강요받았던 많은 이데올로기, 타인과의 관계들을 직접적으로 묘사해주기에 반드시 필요한 서사라고 생각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장면은 역시 '트리니티 실험' 장면이었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묘사할지에 대해 관심도가 높았으나, 이 장면 자체의 묘사보다 그 이후 오펜하이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무엇에 발목을 잡히는지에 대한 것에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치가 되었다. 이런 흐름 속의 <오펜하이머>는 시공간의 역설, 블록버스터로서 '보여줄 만한' 가공할 장면들 없이 장르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성공한 영화가 되었다. 다만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이중적 측면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으며,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장치를 얼마나 정확히 또는 확고히 묘사했느냐를 따지면 거기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생각되지만 말이다. 왜 '오펜하이머'를 선택해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적어도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오펜하이머와 트리니티 실험, 핵폭발과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고민하는 지점에 정확히 윤리를 배반하고 그것을 영화적 쾌감으로 녹이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이 정도가 '영화'로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킬리언 머피를 비롯해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플로렌스 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베니 샤프디와 라미 말렉 등 엄청난 주조연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에 대해서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 특히 킬리언 머피가 놀란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기에 개인적으로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오펜하이머의 감정과 내면에 좀 더 가까이 가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가 '킬리언 머피를 캐스팅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킬리언 머피 자체는 더없이 좋았다. 더불어 <오펜하이머>를 통해 베니 샤프디의 진면목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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